2024-03-29 13:43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25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264)
 210. 마지막 골목대장

 사천시 선구동 농협 앞 로타리 동네, 지금은 차들이 끊임 없이 다니는 도로지만 1950년대 이곳은 하루종일 차가 열 대도 지나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산한 곳이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극장 미술부에 들어간 후에도 한 번씩 낮에 일을 마치고 골목 아이들을 불러 노산으로 올라가고는 했다.

 어느 날은 저녁해가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어둡지 않을 때, 노산 끝자락 언덕의 묘에서 골목대장 팀을 두 패로 나눠 묘 정상 탈환 게임을 했다. 두 팀이 서로 묘 정상에 먼저 오르기 위해 상대를 밀고 당기고 넘어트렸다.

 이 게임을 5~7번 하면 모두 땀이 온몸에 흐르고 힘이 쭉 빠진다. 그러면 게임을 중단하고 묘에 기대 잠시 쉬었다. 나는 그때 이 정든 아이들을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서운했다. 그리고 함께 어울렸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로타리 동네로 이사 와서 제일 먼저 만난 친구가 이운봉이었다. 둘은 첫 만남부터 주먹질을 했다. 둘은 친구가 되어 동네 아이를 모두 모아 놓고 패를 나눠 게임을 했었다.

 찐도리, 쥬이, 카이셍, 차치기 등 여러가지 게임을 했고 로타리 앞, 농협 뒷마당에서 그리고 노산으로 각산으로…. 도시락을 싸서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났고, 각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고 여치를 잡아 집 문 위에 걸어놓고 소리를 들었다.

 농협 손님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간 사이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한 바퀴씩 돌고는 했는데,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서 자전거 발판 하나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삼천포 시절의 추억 하나하나가 나의 가슴 속에 엉킨다.

 같이 대장을 하던 운봉은 통이 커 다른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게임이나 과감한 행동으로 항상 기대와 흥미를 가지게 했다. 그리고 두 패로 나누면 서로가 막상막하로 더욱 신이 났다. 그런데 운봉이 중학교를 진주로 다니면서부터 팀에 자리를 비우게 되고 나 혼자서 대장을 할 땐 팀을 나눠도 그 전만큼 재밌지 않았다.

 골목대장 팀은 함께 성장해 갔고 나도 나이가 들어 서울로 갈 차비를 하고 있다. 다른 소년들도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내가 있을 적에는 내 중심으로 모이지만 내가 없을 적에는 팀을 만들어 하는 게임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3~6명씩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성장하자 초등학생들은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니 우리처럼 팀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로타리 동네에 이사오기 전에 골목대장 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운봉이 중학교에 다니면서 대장 자리를 비우게 됐지만, 나 혼자서 마지막까지 팀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올라온 얼마 후 로타리 가운데 있던 작은 정원이 없어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어디서 차가 생기는지 동네에 차들이 다니고 주차장처럼 차들이 빽빽이 세워져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