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2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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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61)
 208. 5ㆍ16 군사 정변

 극장에 다니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미술부에는 부장이 간판에 영화 주인공 얼굴을 그리고 있었고, 그 아래 다른 사람이 글과 작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지난 간판을 흰 페인트로 지우는 작업과 부장이 그린 밑그림에 바탕을 칠해주는 작업을 했다.

 극장 다른 부서 영사실에는 초등학교 동창생인 김남두가 근무했고 매점에는 이인철이 바구니를 들고 관객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영화는 낮과 저녁때 두 번 상영했다. 낮 상영은 근무 중이라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지만, 저녁 상영 때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극장에 나와서 보기도 하고, 영화가 시작하고 20분 정도 지나면 직원들이 입장표를 챙겨서 사무실로 가버리면 내가 극장 문을 지키는 일을 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지인에게 토막 영화를 보여주는 특권이 생긴 셈이었다. 극장에는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 때문에 일한 것에 대한 보수는 없었지만, 종종 이런저런 돈이 생기면 꾸준히 저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밥을 먹고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집 앞 로터리 공원 앞에 넓은 판자가 세워져 있고 공고가 적혀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제일 위쪽엔 크게 ‘혁명공약’이라고 적혀 있고 중간에는 1~6번까지 무슨 말인지 빽빽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에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이라고 적혀있었다. 군의 최고 책임자 장도영 장군이 혁명을 일으킨 곳 같았다.

 그날부터 신문에는 글자가 지워져 바탕만 남은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신문을 찍기 전에 검열관이 내용을 지워버린 것이다.

 군사혁명이 일어나도 삼천포에는 군인이 오지 않았고 공무원이나 경찰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시민들 또한 전처럼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공원 앞 다음 공고문에는 장도영 장군의 직책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 돼 있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혁명의 주체가 장도영 장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장도영은 혁명의 마담격이었고 주체는 박정희 소장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4ㆍ19혁명으로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외무부 장관이었던 허정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들어서자 3ㆍ15부정선거의 주역들은 구속됐으며,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국회를 주요 내용으로 하여 헌법을 개정해서 새 헌법에 의한 총선거가 실시됐다. 이 선거에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새로 구성된 국회는 나랏일을 이끌어 갈 국무총리로 장면을 선출해 장면 내각을 출범시켰다.

 제2공화국 시대는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했던 격동의 시기였고 교사와 기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며, 대학생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판문점에서 북한 학생과 평화 통일을 위한 회담을 개최하려고 덤벼들었다.

 제2공화국의 이러한 상황을 ‘혼란의 시대’로 보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박정희 소장이었다. 그는 혼란한 사회를 바로 잡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쿠데타를 구상하다가, 1961년 5월 16일, 반공ㆍ친미ㆍ구악 일소ㆍ경제 재건을 명분으로 군사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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