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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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탄
  • 승인 2014.11.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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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59)
 206. 정갑주 의원의 행적

 3대 국회의원 정갑주 의원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삼천포 읍을 삼천포시로 승격시킨 것과 이승만 대통령을 삼천포로 모신 것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이승만 대통령이라 하면 ‘초대 대통령’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나 그전에는 이승만이라 하면, 베트남의 호찌민이나 이란의 호메이니 정도로 한국에서 우상시했다.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절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조선말이 나오는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나 이승만입니다. 일제의 고통 속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곧 해방의 날이 다가옵니다. 힘들어도 조금만 견딥시다”라는 격려의 말을 듣고 국민들은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겠는가.

 그때 국민들은 이승만이 나라를 구원할 영웅쯤으로 여겼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여러 당파가 생겼는데, 그들의 당수는 이승만이 원하든 말든 무조건 그로 정해놓고, 그 다음 직책을 차지했다. 6ㆍ25전쟁 때는 멕아더 장군을 타이르듯 했고, 또 유엔군의 승인도 없이 반공포로를 석방시켰다.

 그런 하늘 같은 분이 남쪽의 작은 읍내 삼천포로 온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온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가 도착하는 여객선 부둣가는 삼천포 시민들로 꽉 채워졌다.

 그때는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을 파고 도는 내륙도로보다는 바다로 다니는 뱃길이 더 빠르고 편했던 시절이다.

 나도 이승만 대통령을 보러 부둣가로 나갔다. 일반인들과 함께 여객선을 타고 온 이승만 대통령이 선착장에서 걸어 나오자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이승만 만세”를 외쳤다.

 중절모를 쓰고 하얀 한복을 펄럭이면서 엄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은 마치 신령 같은 느낌이었다. 그 뒤로 정갑주 의원이 함께했다. 그렇게 삼천포에 도착한 대통령은 어느 부유한 민가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민의 집 안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집 식구들과 함께 아침밥을 드시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갔다.

 당시 정갑주 의원은 내가 재학 중이던 중학교에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서 졸업식 땐 직접 발걸음을 해 졸업생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어울렸다. 그의 딸은 나와 초등학교 동창인데, 우리 인주 삼촌이 모시던 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에게 이런저런 연이 많은 분이다.

 정갑주 의원은 삼천포를 위해 학교를 세우고 의원직도 충실히 수행했는데, 낙선된 것 때문에 시민들에게 서운한 맘을 가지게 됐고, 그 때문에 몰락으로 가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 내가 서울에 있을 적에 종종 그분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일가가 삼천포를 떠났다더라, 정갑주 의원이 타계했다더라, 그 아들이 사업이 잘 안 돼서 어렵다는 등….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회 때 한 번씩 나갔을 때, 그의 딸은 중년이 돼서도 결혼을 하지 않고 단발머리에 수줍음을 타는 듯 해맑은 웃음을 짓곤 했다. 무슨 사연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한 시절 나라와 고향을 위해 일했던 그에게 돌아온 보답이 그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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