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19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09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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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52)
 201. 선무 공작대 시절

 개성이 점령당하자 영의는 인민군을 피해 친척 집으로, 산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기를 서너 달 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면서 개성에 국군이 들어오게 된다. 그제야 영의는 기를 펴고 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중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자 개성은 또 인민군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 영의는 전쟁 중이라 마땅한 직장도 없었고, 나라가 인민군 치하가 되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 같아 강화로 건너가 미군 5816 유격대에 입대한다. 이 부대는 원래 국군 1사단 소속이었는데, 전쟁을 치르면서 미군 소속으로 바뀐 부대이다.

 영의는 입대해 총 쏘는 법, 포복하는 법, 각개전투 등 훈련을 받게 된다. 적의 후방에서 작전하는 부대라 보통보다 더 고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휴식 중이었는데, 저쪽에서 어딘가 낯익은 군인이 서류를 보면서 영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영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 급하게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는 우경희였다. 몇 달 전 문화원에서 같이 일하면서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어 다시 만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경희는 영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영의는 옆 동료에게 “방금 지나간 사람은 누굽니까?”하고 물었다. 동료는 “저분은 선무 공작대입니다”라고 말해줬다.

 선무 공작대란 적의 후방에서 아군에게는 좋게, 적군에게는 나쁘게 선전해 적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부대다. 영의는 ‘그래도 우경희 화백이 나라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 영의는 제식 훈련을 받고 있는데, 특수대원 4명이 다가와 교관과 대화를 나눈 후 영의를 부른다. 영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강화읍 부대 본부로 가게 된다. 부대에 들어오니 어느 한옥집이 보였다. 현관 위에는 ‘선무 공작대’라는 큰 문패가 있었다.

 대원들의 안내로 집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우경희와 장교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영의는 그들을 보는 순간 ‘아, 내 운명도 참 기구하구나’하고 낙담한다.

 그러나 우경희는 전과는 달리 영의를 보는 순간 반가운 얼굴로 “어서 오게 임군. 기록부를 보고 자네가 이 부대에 지원한 걸 알았네”라며 손목을 덥석 잡고 흔든다. 영의는 그렇게 반겨주는 우경희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둘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우경희는 앉아있던 장교에게 “대장님, 이 청년이 그림은 기차게 잘 그립니다. 글도 잘 쓰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사람입니다”하고 칭찬한다.

 유격대 대장은 영의에게 보좌관이라는 직책을 주고 본격적으로 작전에 투입시킨다.

 선무 공작대는 음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등 다양한 재능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영의는 그림을 그리고 적방에 침투해 그림을 몰래 붙여 주민에게 그 실상을 고발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영의가 소속된 팀은 7인이 1조로 3조까지 있었다. 천연색 인쇄기가 없던 시절, 팀원들이 밑그림을 그리면 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이 색칠해 하루에 30여 장 정도를 그려 냈다. 대원들은 그것을 가지고 적의 후방으로 침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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