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36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0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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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49)
 그 후 할머니 기일에 맞춰 일본 고모님은 그의 큰아들, 손녀 둘과 한국에 왔다. 삼천포에서 가족들이 모였는데, 그날따라 고모님은 전과 달리 서울 삼촌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큰아들과 손녀들은 교포임에도 한국말을 전혀 할 수 없다는게 이상했다.

 그렇게 고모님을 뵙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인데, 서울에 있는 다른 친척이 일본 고모님이 서울 삼촌 댁에 있다는 것을 나에게 귀띔해줬다. 그래서 나는 반가운 마음에 삼촌 댁에 전화를 걸어 고모님을 바꿔달라고 했다. 고모님이 수화기를 받자 나는 “고모님, 언제 한국에 오셨어요”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를 확인한 고모는 대답도 하지 않고 후다닥 수화기를 놓아 버렸다. 수화기는 전화통에 제대로 놓이지 않아 고모님의 말소리가 나에게 들려 왔다. 그 말은 “부진이가 알았다. 어서 도망가자”하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내가 또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잘못이다. 고모님에게 한 필지만 넘겨 줬어야 하는데, 두 필지 다 넘겨줘 욕심을 부리게 한 것이다.

 다시 그들과 교류가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모님 일가는 두 필지를 판 돈을 모두 챙겨 급하게 일본으로 떠났다.

 할머니 자녀들은 효심이 없었다. 그들은 할머니 기일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친척들 모임같은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유산을 나눠 가지면 그만이었다.

 그다음 해에는 할머니 집이 헐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할머니 추도일은 없어진다. 누구 하나 먼저 거론하지 않았다. 저승에 계신 할머니는 어떤 기분일까. 할머니의 유언이 내 귀에 박혀 인준 삼촌에게 땅을 몰아 줬지만, 삼촌과 숙모, 그들의 아들 병기에겐 큰 돈이 저주가 된 것이었을까?

 애당초 그 재산을 내가 독차지하고 관리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삼천포에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술을 먹고 싸움을 하고, 친척들과 재산 문제로 옥신각신 다투다가 그 돈이 저주가 되어 인준 삼촌 가족처럼 벌써 죽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그 재산 포기한 내 일생, 길바닥에 몇 번이나 내팽개쳐졌지만 그래도 버티고 나가 만화가로, 대학 교수로, 교회 장로로 기업 사장으로, 또 소설가로…. 세상이란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기를 70여 년, 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몸으로 일하는 것은 남의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한 번씩 삼천포에 내려가면 곳곳에 있었던 할머니 땅을 바라보면 ‘인준 삼촌이 조금만 더 영리해 방 한 칸이라고 남겨뒀더라면 내가 편히 쉬고 갈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또 ‘누군가가 할머니 재산을 잘 관리했더라면 신도시 벌리동에 빌딩이 3~4채는 되어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도 해본다.

 할머니의 재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 앞에서 천 번 만 번 후회해 보지만 되돌리지 못하는 현실에 고개만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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