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6:05 (화)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03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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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48)

 

197. 찢어져 사라진
 할머니 집은 삼천포초등학교 뒷골목 입구에서 문화원으로 잇는 골목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넓은 마당에 본채가 있고 할머니가 나를 위해 마련한 별채가 있다. 어릴 땐 막내 삼촌이 심어놓은 무화과나무에서 여름 내내 무화과를 따 먹었다.
 한 번씩 삼천포에 내려오면 이 집에서 지내기에 나에게는 정든 집이고 소중한 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집이 시청의 도시 계획으로 들어가게 된다.
 골목이 좁아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데, 시청에서 이 골목을 차가 좌우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넓히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 집은 보상금을 받고 없어지게 된다.
 보상금은 1990년쯤 8천만 원이 나왔다. 이 많은 돈을 관리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부산에 사는 막내 삼촌 부인인 숙모가 삼천포로 오게 된다. 그리고 숙모는 막내 삼촌이 할머니 집수리를 해줬던 비용을 빼서 벌리에 아파트 한 채를 산다. 그리고 나머지 돈을 부산에 사촌 숙모와 인준 삼촌 자녀들 5명이 나눠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2년도 되지 않아 넉넉한 집에 시집간 큰딸만 제외하고 나머지 형제에게 나뉜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돈이 생기면 그냥 써버리지 재테크를 하거나 저축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아까운 집만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198. 네다바이
 할머니 재산이 계속 흐지부지 없어지자 나는 조급해진다. 내가 삼천포에 내려갈 때 쉴만한 집 한 채라도 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몇 번 일가가 모여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집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마음만 먹으면 내 것이 될만한 땅들이 있었다. 땅의 문서에는 일본 고모님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을 올려 버리면 다른 말이 많을까 고모님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모처럼 고모님이 한국에 오셨다. 나는 담판을 지으려 고모님을 집으로 모셨다. “지금 고모님에게 유리한 할머니 땅이 두 필지 있는데, 손대지 않고 있으면 인준 삼촌 자녀들이 손을 댈 것이고 그들 손에 들어가면 또 재산이 없어질 것입니다”하고 설명했다. 그리고 “두 필지를 중 한 필지는 고모님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내가 보관하겠습니다. 그 땅에는 별장을 만들어 가족들이 삼천포에 오면 편히 쉬어가게 하겠습니다”하고 통보했다.
 고모님은 생각지도 못한 땅이 생기니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한 필지는 내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그렇게 할머니 유산 대지 300평에 별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나는 늘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 무렵에는 전국에 5개의 학원을 차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삼천포 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고모님에게 맡겨 놓았으니 안심할 수 있고 시간이 나면 삼천포에 가서 내 앞으로 돌려놓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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