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53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02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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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47)
 196. 타버린 재산

 인준 삼촌의 큰아들인 병기는 태어날 때부터 우량아로 태어났고 보는 이들이 신기해 할 만큼 삼촌과 전혀 닮지 않았다. 성격도 거칠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에게도 윽박지르고 함부로 대해 삼촌과 숙모도 병기를 어렵게 대했다. 성인이 된 병기는 내가 삼천포에 종종 내려오면 말상대가 돼주고는 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께서 타계하셨고, 병기는 부둣가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분의 딸과 결혼하게 된다.

 병기 부부는 할머니가 생전 내가 결혼하면 지내라며 지어준 신방에서 살게 되었다. 1년에 한 번, 할머니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삼천포로 내려오면 병기의 아내인 제수씨가 손님을 맞이하고 부엌일을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말수가 적고 속이 깊은게 참한 제수씨가 병기와 결혼해 살아주는게 너무 고맙고 보기 좋았다. 부부는 슬하에 남매를 두고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병기는 할머니 논 300평을 은행에 맡기고 1억 원을 대출받는다. 1990년대에 1억이면 집 두 채 가격으로, 잘만 굴리면 평생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병기는 그 돈으로 신도시 벌리동에 점포를 얻어 가구점을 열었다.

 그해 나는 삼천포에 와서 그 점포에 들렸다. 그때 생각으로는 병기가 기반을 잡고 잘살기를 바랐다. 그걸 보면서 내가 할머니 재산을 포기한 보람도 생겼다.

 그런데 점포가 일년도 안 돼 불이 난다. 목재 가구에 불살이 빠르게 옮겨붙었고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가구점은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직종이라 보험을 들어놨어야 하는데, 병기에게는 그런 지혜가 없었다. 그리고 가구점은 늘 조심을 해야 하는데, 덤벙거리는 성격에 실수로 석유 난로의 기름이 새면서 불이 난 것이다.

 병기는 그 후에도 할머니 집을 보상받아 형제들과 나눠 여러 일을 해봤지만,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았다.

 병기의 거친 성품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러듯 자기 부인에게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귀한 집에서 곱게 자란 제수씨는 어머니 반대도 무릅쓰고 결혼했는데 남편은 매일 막말과 욕설로 자신의 심장을 볶아대니 견디기 힘들었다. 제수씨는 어느 날 어린 남매를 두고 자살해버린다.

 부인을 잃은 병기는 다리에 염증이 생긴 것을 제때 관리를 하지 못해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만다. 병기는 한쪽 다리로 택시 운전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택시 안에서 심장 발작으로 죽고 만다. 가슴 아픈 일들이다.

 1990년대 1억 원과 또 할머니 집 보상금까지 합치면 어렵게 살지 않았을 텐데, 병기는 자기 복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할머니의 귀중한 재산 중 한 몫은 너무나 어이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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