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3:10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29 2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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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45)
 할머니 땅 문서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정확히 게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어설프게 사람 이름만 간단히 적혀있었다. 그래도 시에서 그 땅이 할머니 땅인 것을 알기에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할머니가 타계하시자 제일 먼저 나에게 연락한 것이다. 당시 그값이 2천만 원이었다.

 통지서를 받은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삼천포에 내려가 내 명의로 바꿔버릴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인준 삼촌 식구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 도와줘야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그 곁에는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재산의 많은 부분을 인준 삼촌 앞으로 해놓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등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삼촌의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모두 내 재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삼촌은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생전 할머니의 부탁에 인준 삼촌을 저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외지에 살고 있는 삼촌들도 마음에 걸린다. 재산이 내 앞으로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족 간에 엄청난 갈등과 마찰이 오겠지.

 그리고 또 큰 이유는 당시 나는 한국에서 최초로 애니메이션 교육 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매월 2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어 할머니의 재산에 크게 매달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재산을 포기하고 인준 삼촌 식구들이 유리하도록 만들어 준다.

 삼촌 일가는 자기들 모르게 큰 위기가 왔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인준 삼촌은 할머니가 타계하신 후에도 할머니 집에 살면서 논밭을 관리하며 넉넉한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생활은 넉넉했지만, 지능이 낮아 할 수 있는 일이란 간단한 노동밖에 없었다. 그러니 체면 같은 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었다. 낮에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리어카를 끌고 부둣가에 나가 손님들 짐을 옮겨주고 돈 몇 푼 받아 저녁이 되면 받은 돈으로 술을 마시고 건하게 취해 한 손으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삼촌을 모르는 사람들은 집도 제대로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하루하루 돈벌이로 살아가는 것으로 오해한다.

 인준 삼촌은 그런 행색으로 집에 들어와 숙모와 옥신각신 다투다가 방에 들어와 잠드는 것이 일상생활이다.

 삼촌은 그렇게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3년쯤 지나 술 때문에 간 경화증을 앓다가 타계하고 만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 복을 지니고 태어난다. 가난하게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주위에서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제 운명대로 살고 갈 뿐이다. 할머니는 생전에 숙모님에게 “나 죽으면 너희는 3년 안에 망한다”고 한 예견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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