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8:57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28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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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44)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는 나는 낮에는 총판 일을 하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호기를 부리며 생활했다. 하루는 달력에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을 표시해봤는데,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한 번도 얹잖게 보지 않고 늘 잘해주셨다. 저녁이면 나란히 누워 나에게 이것저것 유익한 말을 해주셨다. 한 번씩 “인생이 둘이라면 한 번은 이렇게 살아보고 또 한 번은 저렇게 살아보고 할 텐데, 인생이 하나라서 그러지 못한다네”라며 노래를 부르셨다. 나는 할머니가 늙어가는 것이 한스러워 그런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또 할머니는 종종 “모자라는 사람은 누군가 도와줘야 살아가지만, 똑똑한 사람은 아무 데나 팽개쳐도 살아간단다”라며 마치 유언 같은 말을 했다.

 지적 장애인 인준 삼촌은 할머니가 곁에 있어 살아가지만, 다른 자식은 자기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가 없더라도 인준 삼촌을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마 자신이 죽고 없더라도 내가 인준 삼촌을 돌봐 주라는 무언의 신호인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준 삼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는 했다.

 숙모가 무엇인가 잘못해 할머니가 야단을 치면 숙모는 꼭 말대꾸를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화가 잔뜩 나서 “너희, 나 죽으면 3년 안에 망한다”며 고함을 지르곤 했다. 나는 그것이 화가 나서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진짜 망할 것을 예견하고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설마…’하고 넘겨버렸다.

 할머니 집에서 지낸 1년은 내 인생에 가장 포근하고 편하게 지냈던 시절이다. 내가 할머니가 택해 준 처녀와 결혼해 삼천포에서 그렇게 계속 살았더라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삼천포에 내려온지 1년이 되자, 만화에 대한 열망이 다시 치솟아 올랐다. 만화가 뭐 그리 좋았는지….

 나는 나에게 모든 정성을 쏟는 할머니도 마다하고 누군가가 도와줘야 살아갈 삼촌 가족에게 할머니 재산을 다 맡기고 다시 만화를 그리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194. 재산 상속의 기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1년 후 나는 중매로 어렵게 결혼하고 차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간 경향의 ‘하얀 그림자’로 시작해 보물섬, 소년 경향, 클로버 문고 등 한국의 일급 지면에서 활발하게 창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씩 삼천포로 내려갔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눈 건강이 차츰 안 좋아지더니 결국 앞을 못 보게 되셨다. 그러다 다음 해 타계하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불효자다. 할머니 기대처럼 삼천포에서 살아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해 늘 후회하고는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후쯤 그때 나는 만화 학원을 설립해 활발하게 사업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삼천포 시청에서 한 장의 편지가 날아온다. 그것은 할머니 재산을 모두 상속 등기하라는 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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