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7:53 (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20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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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38)
 조선달은 진주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삼천포로 내려왔지만 살던 집은 태풍 때 무너진 그대로 방치돼 있어 사람이 살 수 없었다.

 생계를 이어주던 나룻배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여기가 자기 집이었다고 해도 발 디딜 곳이 못 되었다.

 은영이라도 있으면 힘을 내어 집이라도 다시 지어 볼 텐데 그마저 없으니, 집을 고칠 힘은 고사하고 살아갈 의지마저 없다.

 그래서 그냥 그 집을 떠나기로 한다. 은영은 어디 있을까? 그때 나무 조각이라도 잡고 있다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육지로 나왔다면… 혹은 팔포 앞바다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사히 물 밖으로 나왔다면 살아 있을 텐데, 그때 공교롭게도 경찰서에 유치되는 바람에 은영이를 찾지 못한 것이 한스럽기만 한다. 조선달은 오만가지 가능성을 구사하며 은영의 생존을 기대한다.

 조선달은 은영이를 찾아 삼천포 시내를 수십 번 헤맸고, 인근 지역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찾아다녔다. 멀리 걸어가는 아이에게 뛰어가 몸을 붙잡고 얼굴을 자세히 보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의 부모에게 뺨을 맞기도 하고 욕을 먹었다.

 사람들은 조선달을 향해 “벌써 죽은 손녀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비아냥거렸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 한 분이 “2년 전 태풍이 왔을 때 진주 사람 한 명이 혼자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돌보다가 진주로 데려가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조선달은 그 말을 듣고 걸어서 진주까지 은영이를 찾으러 가게 된다. 삼천포에 있을 적에는 아는 사람이 한 끼 밥이라도 차려 주는데, 진주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배고프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 구걸하여 밥을 먹고 길에서 노숙하며 은영이를 찾아다녔다.

 비슷한 여자아이만 보면 얼굴을 잡고 살펴보는 바람에 유괴범으로 오해받고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런 조선달은 행색은 영락없는 실성한 걸인이었다.

 진주에 온지 두 달이 넘었을 어느 날, 조선달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건너편 이층집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조선달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집에 불이 나고 있었다. 불은 일층에 크게 번지고 있었고, 이층으로 옮겨 붙으려 하고 있다. 소방차는 오지 않고 몇몇 사람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집 안으로 쏟아붓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불이 꺼질 것 같지 않았다.

 이때 이층에 창문이 열리더니 어린 소녀 하나가 얼굴을 내밀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하고 외쳤다. 모두 놀라서 고함을 질렀지만, 선뜻 아이를 구하러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 조선달은 여자아이를 보는 순간 은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선달은 ‘은영이다! 은영이가 왜 저곳에 있지’하는 생각에 눈이 커졌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은영아! 할아버지다! 내가 구하러 가마”하면서 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 뜨거운 불을 헤치며 은영이가 있는 이층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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