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2:53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19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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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37)
 조선달은 공터에 모인 이들의 틈을 헤치며 은영이와 수복을 찾는다. 얼마 후에 비에 젖어 입술이 파랗게 변한 수복을 만난다. 조선달은 수복을 반기며 “은영이는 어디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복은 “할아버지가 배를 다시 묶으려 바다 쪽으로 들어갈 때 은영이도 따라갔다”고 답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청천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다. 그 험한 곳으로 갔는데 양수복은 보고만 있었다는 말인가.

 지금 은영이 혼자 태풍 치는 바다에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너무나 어리석은 수복의 행동에 조선달은 왈칵 화가 치밀어 “이놈아, 파도가 저렇게 심한데 어린아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만 있었단 말이야?!”하며 수복의 멱살을 잡고 몇 번 흔들다가 뒤로 힘껏 밀쳐 버렸다.

 다리가 성한 사람이라면 조금 뒷걸음질을 하다가 넘어지겠지만, 한쪽 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복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기구한 일이다. 은영이를 찾으러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수복이가 정신을 잃었으니, 우선 수복이를 인근 동네 병원으로 옮긴다.

 그리고 조선달은 다시 은영이를 찾기 위해 팔포로 뛰어간다. 동네는 이미 물바다에 방파제를 내려치는 파도때문에 도저히 견디지 못할 지경이다.

 조선달은 저 험한 파도 속에 은영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조선달은 거센 비와 파도에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물 밖에서 “은영아! 은영아!”하고 고함을 치고 있다.

 이때 순경 두 사람이 다가오더니 조선달을 잡고 바다 밖으로 끌고 나와 양손에 수갑을 채운다. 어리둥절한 조선달은 순경을 바라보며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순경은 “당신이 밀친 양수복이 죽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는 몸부림을 치며 “안됩니다. 지금 물속에 있는 우리 은영이를 찾아야 합니다”하고 발악을 하지만 순경들은 야박하게 그대로 조선달을 끌고 경찰서로 향한다.

 수복이 죽고 은영이도 못 찾다니…. 아, 통곡할 노릇이다. “은영아, 살아만 있어다오” 조선달이 절규했다.

 188. 은영이를 찾아서

 그 후 1년 하고도 10개월이 지났다.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태풍은 늘 팔포를 노렸다.

 바람이 불고 비가 몰아치면 모두들 집에서 나오질 않아 사람이란 볼 수 없는 팔포 앞바다. 창이 넓은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계절에 맞지 않은 긴팔 옷에 바다를 향해 “은영아, 은영아”하고 외치다 지치면 하모니카를 꺼내 ‘클레멘타인’을 연주한다. 모두들 이 할아버지를 ‘팔포 클레멘타인’이라 불렀다.

 이 사람이 바로 이년 전 과실치사 죄로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은영이의 할아버지 조선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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