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9:3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17 0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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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36)
 187. 운명의 날

 하룻밤만 지나면 추석이다. 조선달과 은영이는 꽤 들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은영이 엄마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음식 만드는데 한창이다. 이때 밖에서 수복이가 들어온다. 양수복은 혼자 살기 때문에 외로울 때마다 조선달의 집에 찾아오고는 한다.

 조선달과 은영은 수복을 반갑게 맞이한다. 수복은 자리를 차지하더니 금세 송편 반죽 그릇에 손을 넣어 송편을 빚기 시작한다. 추석 차례 준비로 세 사람의 얼굴엔 웃음꽃이 핀다.

 그렇게 한참이나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거센 바람까지 몰아친다.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은 놀랐지만 ‘조금 있으면 그치겠지’하는 마음으로 음식 만드는 일에 계속 집중한다.

 그런데 비는 그치지 않았고, 바람은 더욱 거세져 창문과 대문을 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모두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설마 무슨 일은 없겠지’하며 일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방문 사이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조선달은 방문을 열어 밖을 본다. 마당에는 이미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고,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조선달은 바닷가로 눈을 돌렸다. 큰 파도가 방파제를 내려치면 부딪친 파도는 하늘로 치솟아 다시 동네의 집 지붕을 내려치고 있다. 더 먼 바닷가에 매어둔 배들은 높은 파도에 휩쓸려 요동을 치고 있었다. 난리가 난 것이다. 조선달은 자기 배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배를 다시 단단히 묶기 위해 급히 밖으로 뛰쳐나간다.

 은영은 그 모습이 무서워 “할아버지, 바다로 가면 안 돼요”라고 외치며 조선달 뒤로 따라 나선다. 그때 양수복이 은영이를 붙잡으며 “은영아 안돼, 위험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영은 자기 팔을 잡고 있는 수복의 손을 이리저리 뿌리치며 “안돼, 할아버지에게 가야 해”라고 한다. 이 바람에 한쪽 다리가 불편한 수복은 미끄러지면서 은영이를 놓치고 만다.

 은영은 조선달이 사라진 쪽으로 “할아버지!”하고 외치며 사라진다. 양수복은 간신히 일어났지만, 계속 밀려오는 바닷물에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 혼자 파도를 피해 동네 밖으로 빠져나간다.

 조선달은 배를 묶어 놓은 곳까지 갔지만, 배는 보이지 않았다. 생계를 이을 배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넋이 빠져 서 있는 조선달을 파도 저편에서 다른 배가 밀려와 덮치려 했다. 용하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파도가 얼마나 저만큼 멀리 밀려 버렸다.

 파도에 밀려가던 조선달은 구석에 부딪혔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이제 집으로 달려간다. 파도가 두 번이나 더 밀려와 그를 덮쳤지만 꿋꿋이 집까지 온다. 그런데 집에는 은영이도, 수복도 보이지 않았다.

 조선달은 양수복이 은영이를 데리고 동네를 빠져나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사람들이 동네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선달도 사람들과 함께 동네를 빠져나와 시장 입구 넓은 공터까지 왔다. 그곳에는 팔포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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