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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14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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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34)
 그러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우리나라 남해안을 덮쳐 큰 피해를 줬는데, 삼천포에도 특히 바닷가 근처 동네인 팔포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그 후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여름이 돌아오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이면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챙이 넓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긴팔 옷을 입고 등에는 보따리를 지고 팔포 바닷가에 와서는 몰아치는 태풍을 향해 “은영아, 은영아”하고 슬피 외치다가 하모니카로 클레멘타인 곡을 부르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팔포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를 팔포 클레멘타인이라 불렀다.

 185. 팔포 이야기

 팔포는 우리 동네에서 동남쪽으로 300m쯤 되는 노산 밑의 해변가에 있는 동네이다. 폭이 2m 정도의 미로 같은 길이 이리저리 뻗어있고 길 양쪽으로 돌로 담을 쌓고 양철 지붕으로 지은 집이 2백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어부, 노동자, 시장 장사꾼들이 주로 살고 있는 곳이다.

 나는 한 번씩 팔포 동네 골목길로 해서 목섬 쪽 앞바다로 가기도 했다. 목섬은 팔포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섬인데 썰물이 심할 땐 팔포 앞에서 목섬까지 이어지는 길이 생기곤 한다. 이 길을 따라 동네 사람들은 목섬까지 가서 해삼, 굴, 게, 말쏙, 골뚜기 등 해산물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 골목 대장팀이 노산으로 갈 때에는 큰 대로로 쭉 가면 쉽게 갈 수 있었지만, 간식거리인 우렁쉥이(멍게)가 먹고 싶을 때는 좀 멀더라도 팔포 길을 택했다.

 팔포 방파제에서 노산 바닷가 위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넓은 콘크리트 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는 모구리배가 바다에서 따온 우렁쉥이를 2~3군데 무더기 채 쌓아 놓았다가 공판 시간에 나가 팔고는 했다. 공판 시간까지 마당에 쌓아 둔 우렁쉥이는 사무실에서 아저씨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팀은 팔포 동네에서 나와 공판장 우렁쉥이 앞을 지나 노산 바위로 가고는 했다. 그때 우렁쉥이 더미 앞으로 지날 때는 사무실 안의 아저씨가 우리를 항상 주시했다.

 우리는 한 사람과의 거리를 5m 정도 두고 한 줄로 서서 자세를 꼿꼿이 하고 보란듯이 두 손을 흔들며 앞으로 걸어간다.

 그러면 지켜보던 아저씨는 별일 없는 것으로 보고 안심을 한다. 그러나 실은 아저씨에게 보이지 않는 발은 무더기에서 떨어져 있는 우렁쉥이를 앞을 향해 힘껏 차 버리거나 축구공을 몰 듯 살살 몰고 있다. 아저씨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가서 손으로 주우면 우리 것이 된다.

 그렇게 주먹보다 큰 우렁쉥이를 모두 2~3개씩 확보하고 바위 위에서 놀면서 맛있게 먹고는 했다.

 그런 팔포 동네가 1959년 추석, 해일을 동반한 태풍이 몰아쳐 물바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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