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2:21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12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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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32)
 덕철은 어머니를 계속 미국에 붙잡아 두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 결국은 한국에 거처를 준비하고 어머니를 돌려 보낸다. 그리운 고향에서 어머니는 조금 안정되는 듯 했지만 그 이듬해 세상을 하직한다.

 아들의 돈벌이 때문에 향수병으로 단명한 것이다. 그때 덕철이 형은 돈을 위해 참 비장하게 살았다.

 183. 잘못 산 회사

 어머니가 타계하자, 덕철이 형은 다시 자리를 잡고 병아리 감별에 매달린다. 한 달에 천달러가 넘는 큰돈이라 이것저것 써도 남은 돈은 500불이 넘었다. 그 돈을 저축하면 일년에 6천불이 모였고, 이것이 10년이면 6만 불이다. 1970년대 집을 몇 채나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 사이 짝사랑하던 양자가 방송국 기자에게 시집갔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래서 젊을 적 양자와 결혼하겠다는 야심찬 꿈은 접고 교회 성도의 소개로 참한 규수와 결혼해 자식도 낳아 키우며 한 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미국에 온 지가 20년이 가까워졌다.

 그는 돈이 좀 모이고 가정도 화목해지자, 퀴퀴한 닭장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은 항문을 가리고 있는 솜털을 걷어 올려 암수를 구분하는 작업이 실증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일 했던 정진호가 운영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영업점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정진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덕철이 형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중 그는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은 잘 되지만 서부보다는 남부로 가서 터를 닦고 싶다”며 할 수 없이 타인에게 회사를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로는 월 수입이 적어도 1만불 정도라 했다. 엄청난 돈이었다. 마침 감별 작업에 실증이 나있던 덕찰이 형은 정진호에게 “회사를 나에게 넘길 수는 없냐?”라고 물었다. 정진호는 머뭇거리다 “한국에서 같이 온 정을 생각해 넘겨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덕철이 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의 절반을 뚝 잘라 회사를 인수한다. 이제 닭장으로 출퇴근하지 않아도 된다. 개끗한 옷을 입고 깨끗한 사람들과 어울려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회사를 인수 받았고, 운영한지 20일이 지났을 때 한 장의 편지가 왔다. 덕철이 형은 편지를 뜯어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 청구서였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한 장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그것은 물품 대금의 독촉장이었다. 그런 청구서가 잇달아 날아든다.

 그제서야 덕철이 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진호을 찾았지만, 연락할 길이 없었다.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정진호는 회사로 인해 받을 돈은 다 챙기고 지불할 돈은 그대로 둔 채 인수해 버린 것이다.

 회사가 아무리 잘 된다 해도 막대한 부채를 안고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어야 했다. 그러나 혹시 잘못되면 20년을 공들인 탑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 사회는 신용사회다. 회사를 얻을 때 한국에서는 보증금이 신용을 대신 해주지만, 그런 제도가 없는 미국은 신용으로 세를 주는 곳이다. 그러니 덕철이 형이 회사를 파산시키면 신용 추락으로 더 이상 사업이나 사회활동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덕철이 형은 가진 돈으로 회사를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남은 돈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터를 닦아야 하는지의 기로에서 망설이다 결국 남은 돈을 챙겨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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