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8기 성공신화… “오기로 버텼죠”
7전8기 성공신화… “오기로 버텼죠”
  • 김현철 기자
  • 승인 2014.10.0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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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화정산업 김정건 대표
▲ 화정산업은 현대ㆍ기아ㆍ대우 등 22개 국내 기업업체와 협력업체 제휴를 맺고 청소기 등 내장재 고무패킹을 전문적으로 생산ㆍ납품하고 있으며 내년 연매출 200억 원을 목표로 또다시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994년 창업 후 내년 사업장 확장 이전 연매출 200억 목표

 “1997~98년 IMF 금융위기로 큰 부도를 맞았죠. 그 충격에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에서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잠시 바위 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데 저 푸른 바다 위에서 아들 녀석 둘이 뛰어오면서 “아빠”라는 목소리(환청)가 들렸습니다. 자식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눈을 떴죠. 당시 내가 왜 이 벼랑 끝에 서 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파도가 치는 아찔한 벼랑 아래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죠.”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7전8기의 성공신화를 쓴 한 기업가가 있다. 주인공은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소재 화정산업 김정건(58) 대표다.

 김 대표는 7번의 사업 실패 끝에 연 매출 45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가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기 뒤에는 드라마 같은 사연이 많다. 김 대표의 고향은 함양이다. 그는 어릴 적 너무 가난해 중학교 1학년 무렵 자퇴했다. 학교에 등교하면 선생님의 회비 독촉이 하루 일과였다.

 선생님의 성화에 그는 11개월 23일 만에 꿈 많은 중학교 시절을 접는다. 김 대표는 “학교 교문을 뛰쳐나올 때 교복, 책가방을 운동장 가운데 모아놓고 불을 질렀죠. 서러움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요. 그때 다짐하고 다짐해죠.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라며 어려웠던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김 대표는 학업을 포기하고 형님의 농사일을 거들며 부농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결심 끝에 18세의 어린 나이로 부산으로 상경한다.

 그가 처음 입사한 곳은 가구공장이다. 그곳에서 그는 2년을 일했다. 꿈 많은 20대 청춘, 그는 무엇에 홀리는지 모르지만 가수의 길을 걷기 위해 미친 듯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년의 허송세월도 보냈다.

 보다 못한 형님이 고향으로 내려올 것을 권유했다. 그는 고민 끝에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하며 재기의 날을 갈기 시작했다. 그는 고향에서 청소년 4H활동 등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았다.

 김 대표는 “친구들처럼 공부를 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부끄럽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며 “그래서 농사일과 청소년 4H활동 등 봉사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김정건 화정산업 대표는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7전8기의 성공신화를 썼다.
 그는 고향에서 5년간 청소년 4H활동을 하면서 1978년 함양군 4H연합회장을 역임했다. 그 공로로 1979년 경남4H청소년대상 수상과 전국4H청소년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지ㆍ덕ㆍ노ㆍ체 4H이념 아래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1980년 부산의 한 고무패킹 공장에 입사를 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8년간 근무하면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홀로서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1988년 3월 1일 A회사라는 상호로 첫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성공기는 순탄치 않았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그는 7번의 시련을 겪게 된다.

 시행착오, IMF 금융위기 등 그러면서 당시 2억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부도 맞으면서 일생일대의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된 것이다.

 7번의 사업실패는 그에게 절망으로 다가왔다. 빚더미에 않은 그의 선택은 목숨을 끊는 길밖에 없었다. 그 길로 김 대표는 부산태종대 자살바위를 찾았다.

 김 대표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목숨을 끊겠다고 나간 내가 죽지도 못하고 공장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데요. 자식도 자식이지만 아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다가왔어요”라며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둬야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정산업은 지난 1994년 부산강서구에서 330여㎡ 규모로 설립됐다. 이후 2002년 사세를 확장해 김해로 이전했다. 그리고 두 번째 2007년 현재의 사업장인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279-2 번지(부지 3천966여㎡, 건평 2천300여㎡)로 이전하면서 연 매출도 4배 이상 껑충 뛰었다. 직원 수도 30명으로 늘었다.

 이 같은 결과는 김 대표의 남다른 열정과 ‘하면 된다’는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난 2002년 그린사업장 인증획득, 2003년 IOS9001인증획득, 2005년 IOS14001인증, LG친환경 인증 획득 등 화정산업은 환경과 기술개발이라는 회사연혁을 다시 쓰고 있다.

 현재 화정산업은 현대ㆍ기아ㆍ대우 등 22개 국내 기업업체와 협력업체제휴를 맺고 자동차, 청소기 등 내장재 고무패킹을 전문적으로 생산ㆍ납품하고 있다.

 화정산업은 연매출 200억 원을 목표로 또다시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정건 대표 “2015년 상동면이나 생림면으로 사업장을 이전하려 한다. 부지물색도 끝난 상태다”며 “새로운 기술개발도 마무리 단계다. 내년 200억 원 매출 목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자신했다.

 벌인 만큼 사회에 환원한다는 그는 현재 한국법무복지공단 전국후원연합회 자문위원, 한국법무복지공단 경난지부수향취업알선분회 회장, 김해소방서 안전대책위원장, 김해서부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 고문, 김해시 푸른21추진위원 등 지역을 위해 수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1회를 비롯해 노동부 장관ㆍ행자부 장관ㆍ범무부 장관 표창 등 총 30여 차례 표창을 수상했다.

 인생 2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김 대표는 앞으로 고향 모교를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학창시절 배우지 못한 한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봉사는 나의 천직이다. 번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인생 2막을 위해 열심히 나의 일에 충실하고 싶다”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달콤한 열매는 맺는다”며 그 목표를 위해 모두들 열심히 꿈을 키워나가자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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