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5:08 (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01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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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27)
 178. 짝사랑

 덕철이 형의 능력은 그뿐만 아니었다. 마당 구석의 낡은 창고 천장에는 줄을 두 개 달아 놓고 그 끝에는 지름이 25㎝ 정도 되는 링을 연결해놨다. 두 손으로 그 링을 잡고 다리를 흔들다 힘을 실어 링 위로 솟구쳐 올라 물구나무를 하기도 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멋졌다.

 덕철이 형이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은 체조선수로 대회에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운동이 좋아서 취미로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덕철이 형과 단둘이 있는데, 형은 평행봉 위에서 기분 좋게 몇 바퀴를 돌다가 멈추고 평행봉에 두 어깨를 걸치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부진아” 그 모습에 나도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왜요 형”하고 답했다. 이어 덕철이 형은 “이 이야기는 비밀인데, 너 혼자만 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 말에 분위기는 더욱 무겁고 긴장됐다. 형이 나에게 들려줄 비밀은 무엇일까? 궁금한 나는 귀를 바짝 세운다. 덕철이 형은 고개를 먼 산 쪽으로 치켜세우고 “나 양자하고 결혼할거다”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청난 비밀이 나올 줄 알고 기대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양자가 누구인가, 삼천포에서 존경받는 수창의원의 손주 딸이다. 그리고 또래 여학생 중 최고의 미인이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공부할 인재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그만인 국밥집 덕철이 형이 어떻게 양자에게 그런 야심을 품는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피식’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덕철이 형은 나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부진아, 네가 보기엔 잘 될 것 같으냐?” 나는 할 말이 없다.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덕철이 형의 발이 내 엉덩이로 날아들 것이다. 그래서 대답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

 덕철이 형이 나에게 왜 그런 비밀을 말한 것인지 분석해 봤다. 양자 집 수창의원은 우리 집과 등을 대고 있는 이웃이다. 나와 같은 교회, 같은 반이고, 한 번씩 내가 동네 아이들을 몰고 양자 집에 놀러 가 같이 어울리기도 하는 사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덕철이 형은 양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 조력자가 돼줄 것을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나는 거짓말로 덕철이 형의 비위를 맞출 생각은 없어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덕철이 형은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왜 대답이 없어, 내말이 신빙성이 없어 보이냐?”라고 말했다. 이어서 자기 포부를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삼천포에서 썩을 놈이 아니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객지를 나가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 거다. 돈 앞에는 어떤 미인도 굴복하는 거야. 나는 양자에게 큰 집도, 값비싼 보석도 사줄 거다. 양자는 나에게 안 올 수 없어”라고 말한다.

 그때만 해도 덕철이 형은 멋쟁이였다. 기운도 넘쳤고 의욕도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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