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00:47 (일)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9.30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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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26)
 1995년에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면서, 신동헌 선생님은 이름만 빌려준 것이지 직접 참여하진 않았다. 작품은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제작비를 대고 일본 작가들이 각본과 감독을, 윤석화 외 이름있는 탤런트가 더빙을 하는 등 거창하게 제작됐지만, 외색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었던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애니메이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대부’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애니메이션이란 좌판을 벌인 것은 자기지만, 스스로 실패한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자기보다 성공한 후배에게 그런 소리를 듣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인들이 자기더러 “대부님, 대부님”하고 부르면 그들이 진짜로 존경스러움에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실패한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가늠하지 못해 거북스러워했다.

 6ㆍ25전쟁 때 이북에서 7형제 중 신동헌 선생님을 포함한 4형제가 월남했다. 서울대 의대에 학장을 두 번이나 하고, 아우들이 만화를 그리는 것을 늘 애처롭게 여기며 한 번씩 불러 돈을 줬던 큰 형 신동훈 박사, 같은 만화가로 활약하며 수족 같았던 막내 신동우 선생님, 자기 회사에서 일을 봐주던 손아래 동생 신동철도… 다 먼저 떠난 후 이제 혼자 남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과 만화 행사를 다니며 얼굴마담 역할을 하셨는데, 이제는 기력이 없으신지 그마저도 나갈 수 없나 보다. 한적한 동네 외롭게 혼자 사시는데, 며칠에 한 번씩 집안일을 돕는 아주머니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는 한다.

 인생의 뒤안길, 이제는 부는 바람만 쳐다보며 한 장르의 신화적인 존재는 이렇게 쓸쓸히 살아 계신다.

 177. 덕철이 형

 유소년 시절,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동네 아이를 모두 모아 조직적으로 게임을 하면서 놀기도 했고, 그 외에도 교회에 다니는 친형의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놀 때도 있었다.

 천석꾼 할아비지의 손주인 장철 형, 아직도 그 교회에 다니며 장로까지 된 성웅 형, 서울신문사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순행 형, 그리고 한덕철(가명) 형 등이다.

 덕철이 형은 키가 큰 편이 아니었지만 달리기는 선수급이었다. 학교 운동회 달리기 릴레이 대회에 덕철이 형이 마지막 주자로 나왔는데 한참을 지고 있던 경기를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 단숨에 상대를 앞질러 운동장이 환호성으로 가득했었다.

 덕철이 형 집은 우리 집에서 교회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데, 마당이 300~400평이나 되는 넓은 집이었다.

 형들은 교회 사택에 가서 트럼프 놀이를 하거나 교회 뒤쪽 언덕에 올라가 권투 시합을 하는 것 정도다. 그리고 어떨 때는 덕철이 형 집에 가서 놀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덕철이 형은 자기 집 마당에다 평행봉을 세워 놓고 자주 운동을 했다. 덕철이 형이 평행봉에서 다리를 휘젓다가 두 손목에 힘을 주며 상체를 평행봉 위로 올렸고, 물구나무를 섰다가 몸을 몇 바퀴 돌렸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감탄에 감탄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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