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1:59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9.29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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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25)
 김대중에게는 영특한 부인이 있었다. 이름은 최수희(가명)인데, 한국일보 출판국에서 전속 작가로 활약하던 모 만화가의 여동생이다.

 한국일보는 작가에게 한 달 작품량을 정해놓고 거래하기에 그녀의 오빠는 늘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최수희는 배영랑 선생님의 소개로 유니버설에 입사하게 되고 김대중에게 애니메이션을 배우다가 사랑이 싹 터 결혼하게 된다.

 최수희는 쾌활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작업 수완이 좋아 일본을 드나들며 남편에게 일감을 끊임없이 제공했다. 최수희는 윤성 애니메이션 회사를 설립하는데 공을 세우고 후에 세영동화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된다.

 1970년대 후반 일본 도요에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세영과 대원에서 절반 이상을 소화하고 있었다. 두 회사와 도요에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로 군림하기도 한다.

 그러다 1980년대가 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미국 측 하청 작업이 한호 흥업을 통해 물밀 듯 들어오면서 일본 측 회사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때 도요에는 한국에서 모든 작업을 철수시킬 계획을 세우며 김대중을 일본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그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미국 회사의 작업 공세에도 세영 동화를 굳건히 지켜냈다.

 그러다가 정부에서 올림픽이 다가오는데,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외국회사에 하청만 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KBS에서 이현세 작품 ‘떠돌이 까치’를 드라마화할 계획을 세우고 세 편의 작품을 세영과 대원, 다른 회사에 나눠 제작하게 한다. 이를 발판으로 세영동화는 순수 창작 애니메이션 드라마 2020원드키디를 제작했다. 2020원드키디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 방영되면서 세인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세영은 신림동에 사옥을 두 동이나 지어 운영해 나갔다. 세영의 운영진은 시대를 앞서 나갔다. 창작의 모든 작업이 컴퓨터 작업이 될 것을 미리 예견했는지 미국에서 억 대의 장비와 기술자를 초빙해 스튜디오를 차렸다. 크기가 캐비닛 정도로 컸던 장비들은 처음에는 귀하고 엄청난 고가였지만, 기술자 교육과 작업 준비 과정이 몇 달이 넘어서자 금세 구형으로 바뀌고 만다. 작업도 시작하지 못하고 엄청난 돈을 날린 격이 된 것이다. 그 계기를 회사는 점점 쇠약해졌고, 결국 도산하고 만다.

 김대중은 신동헌 선생님이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고 초기에 가르친 제자다. 실력으로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며 또 작업에 할애하는 노력과 집념은 신기에 가까운 전설의 인물이다.

 176. 쓸쓸한 뒤안길

 신동헌 선생님은 한국에 애니메이션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극장용 홍보 영상물,일본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 수출용 애니메이션 회사를 만들어 나라에 애니메이션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분명 한국의 애니메니션 개척자로 추앙받을 분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공로자’란 것 외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유니버설의 실패 후, 2년의 외국 살이 끝에 귀국했고, 그때 제자 정욱에게 MBC 뽀뽀뽀의 애니메이션을 넘겨받아 3년 정도 작업. 그 이후로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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