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9:43 (화)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9.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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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23)
 마블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에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를 설립했는데 한국 회사는 ‘에이콤’이었다.

 설립 후 마블은 한국의 에이콤을 거의 떠밀다시피 넬슨 신에게 인계해 버린다. 1980년대 초 에이콤은 3~4곳의 사무실을 두고 3일 만에 20분짜리 TV 방송용을 제작할 정도로 세계 최대의 제작 회사로 활발하게 운영됐다.

 그러다 미국 시장은 제작사에서 먼저 제작한 작품을 방송국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 방식에 넬슨 신은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을 보류하고 창작품을 제작하기로 운영 방침을 바꾼다.

 첫 번째 장편 작품을 ‘심청전’으로 정하고 홍콩에서 만난 이북 사람을 통해 평양에 회사를 만들어 북한 애니메이터를 동원해 제작을 완료한다. 그러나 개봉관의 횡포에 상영을 며칠밖에 하지 못 했고 속이 상한 넬슨 신은 더 이상 공개를 하지 않는다.

 넬슨 신 회장은 아직도 애니메이션 창작의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천안에 수만 평의 부지를 장만해 그곳에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건립 계획을 세우고 있다.

 174. 제자 정욱

 대원미디어의 정욱 회장은 신동헌 선생님의 유니버설 시절 중 함께 활동했던 주요 애니메이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애니메이터 중 사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분이다.

 1946년에 태어나 강원도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신동헌 선생님의 동생인 신동우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1960년대 중반 한국에는 만화라고는 대여점 만화밖에 없었다. 신동우 선생님이 대여점 만화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다. 당시는 작가가 히트를 했다 하면 문하생을 동원해 한 달에 20~50권씩 작품을 제작했는데, 신동우 선생님은 화풍이 워낙 특이해 아무에게나 자기 작품을 맡길 수 없었다.

 이때 정욱은 신동우 선생님 밑에서 잡일을 보면서 만화를 배우게 된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이 있었는데, 이분이 나중에 정욱 회장을 도와 대원을 이끌어가는 안정아 여사다. 남녀는 그렇게 선생님 일을 도우며 사랑을 키웠고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정욱은 입대하고 신동우 선생님은 만화계를 떠나 민속화가에서 애니메이터로 전향하게 되고, 또 안정아는 한국일보 출판국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제대한 정욱은 안정아가 근무하는 한국일보 출판국에서 ‘안정아’라는 필명으로 만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들은 결혼해 한국일보 출판국에서 작품 생활을 해오다가, 신동헌 선생님이 운영하는 유니버설에 입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신동헌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애니메이터로서 실력을 쌓아갔고, 일본의 영화사에 하청을 맡아 친구이며 애니메이션 감독인 김대중과 함께 유니버설에서 나와 ‘원 프로덕션’을 만들어 운영하게 된다. 그 후 다시 김대중과 회사를 분리했고, 그때 나눠진 회사가 정욱의 ‘대원동화’, 김대중의 ‘세영동화’였다.

 당시 일본 동영 영화사의 파워는 막강했다. 한국에 메이저급 회사인 대원동화, 세영동화, 유성웅이 이끄는 교육동화에게 일감을 제공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파워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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