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8:20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9.24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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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22)
 173. 제자 신능균

 그렇게 훌쩍 떠나버린 신동헌 선생님에게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미련이나 꿈은 없었을까? 그 당시 그는 한창 일할 수 있는 40대 후반의 나이었다.

 선생님이 한국 최초의 장편 영화를 두 편 제작한 것과, 한국이 애니메이션 제작국으로 가는 발판이 된 유니버설 회사를 설립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후 그가 꿈꾸던 애니메이션의 대한 미련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손수 가르치고 키운 애니메이터들의 등장으로 풀게 된다. 에이콤 회사의 회장인 넬슨 신도 그중 한 명이다.

 ‘신능균’이란 이름은 호적상의 이름, 작가 생활 중 필명으로 사용한 이름은 ‘신능파’이며 미국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할 때는 ‘넬슨 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럼 이야기는 1960년대 초 신동헌 선생님이 만화작가로 활동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어느날 선생님 댁으로 어느 청년이 시사를 받기 위해 찾아와 자기 작품을 내놓고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청년은 수줍움을 타는 듯 보였다. 선생님은 청년의 그림을 천천히 살펴 보다가 하는 말이 “이 정도의 실력으로는 만화가로 성공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 가게나”라고 한다.

 그래서 되돌아 간 청년은 며칠 후 다시 선생님에게 찾아와 다시 시사를 부탁한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청년을 받아드리고 문하생으로 집에서 기거하게 한다.

 그 당시와 1980년대까지도 한국에는 만화를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기관이 없었다. 그래서 지망생은 만화가 선생님 집에 찾아가 그곳에서 잡일도 거들며 만화를 배우는 것을 ‘문하생’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수줍음을 타던 분이 만화작가 신능파 선생님이다.

 신동헌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만화를 배운 그는 그림체가 선생님의 화풍과 많이 닮아 있었고, 곧 잡지에서 작가로서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그 뒤 신동헌 선생님을 따라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하고, 별도로 작업을 도맡아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러다 한국의 창작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미국으로 간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미국생활은 고생만 가득했지만, 어느날 길가에서 미국인 신사가 다가와 “한국인 인가?”하고 물었고, 또 “도라지 꽃이 어떻게 생겠냐”고 물어 왔다 .

 그래서 신능파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도라지 꽃을 그려줬다. 그 신사는 광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고객이 찾아와 “자기 점포에 상표로 도라지 꽃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는데, 도라지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신능파 선생님은 신사의 광고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게 된다. 차츰 신능파 선생님의 그림 솜씨는 소문이 났고, 어느날 어느 회사에 부름을 받고 스필버그 제작 영화인 스타워즈의 검의 빛을 애니메이션화 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재력과 경험이 축적되자, 미국의 대형 애니메이션 회사 마블과 손잡고 심슨 가족, 핑크팬더, 지 아이 조, 판타스틱, 트랜스 포머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한다. 그때 이름도 미국 사람이 부르게 좋게 넬슨 신이라 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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