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7:19 (토)
採紅使(채홍사)
採紅使(채홍사)
  • 송종복
  • 승인 2014.09.17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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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採:채 - 뽑는다 紅:홍 - 붉다 使:사 - 시키다

 미녀를 뽑기 위해 파견한 관리를 채홍사라 하며, 이때 뽑혀서 궁중에 드나드는 미인을 흥청이라 한다. 날마다 이 흥청과 놀아나다 패가망신했으므로 이를 흥청망청이라 한다.

 연산군은 조선 팔도에 채홍사(採紅使)를 파견해 처녀, 유부녀, 기생, 종, 의녀(醫女), 무당, 여승(女僧), 과부, 첩을 불문하고 인물만 반반하면 모조리 잡아오도록 했다. 이같이 여색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모친이 폐비 당해 사약까지 먹은 모정의 사무친 한을 달래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사에 전념하기보다 주색잡기(酒色雜技)로 일관했다. 윤비의 소생으로 태어난 연산군은 어려서부터 모정이 메말랐다. 후에 왕위에 오르자 폭군으로 변질돼 희대의 색마로 보냈다.

 그는 1505년(연산군 11년) 6월 이계동(李季同)을 전라도로, 임숭재(任崇載)를 경상도와 충청도의 채홍사로 임명했다. 그 뒤 채청여사(採靑女使), 채홍준체찰사(採紅駿體察使), 채홍준종사관(採紅駿從事官), 채홍준순찰사(採紅駿巡察使) 등으로 명칭을 바꿔 전국에 파견해 미녀를 강제로 징발했다.

 한편 채홍된 여자의 집에는 봉족(奉足)과 잡역(雜役)을 면제해 주고 후원했다. 이 제도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출됨에 따라 폐지됐다.

 연산군은 여기에 뽑힌 기생의 명칭을 운평(運平)이라 했다. 또 원각사를 개조해 기생양성소로, 성균관의 학생들을 내쫓고 기생들의 유흥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기의 독특한 분류법으로 운평(運平), 계평(繼平), 채홍(採紅), 속홍(續紅), 부화(赴和), 치여(治黎)의 칭호를 두는 한편, 따로 뽑은 여자를 흥청락(興淸樂)이라 했다.

 여기에 임금과 동침한 여자는 천과흥청(天科興淸), 아직 손대지 않은 처녀는 지과흥청(地科興淸), 동침했는데도 만족을 못 본 여자는 반과흥청(半科興淸)이라 해 삼과(三科)를 뒀다.

 이로써 주야로 흥청들과 놀아나며 자신이 말[馬]이 돼 흥청들을 태우고 기어 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자기가 그녀들 등에 올라 타 말(馬)놀이를 즐겼다. 그것도 모자라 민간 유부녀도 예쁘다는 말만 들으면 불러다 함부로 겁탈하고, 심지어 큰 아버지인 월산대군의 부인까지 성추행했다. 이 문제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은 왕좌에서 쫓겨나고 목숨을 잃었다.

 여인이 임금과 한 번 동침하면 그 날로 천과흥청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데, 이 천과흥청(天科興淸)이라 쓴 큼직한 문패를 마음에 드는 민가의 대문에 못질만 하면 그 집은 바로 흥청집이 되고 집주인은 쫓겨나야만 했다. 이 같은 사실이 뒤에 ‘흥청거리다’라는 말로 굳어버린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세인들이 ‘돈을 함부로 써서 위태롭다’는 뜻의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새로이 생겨났다.

 최근에 전 청와대 수석이, 전 검찰청장이, 전 지검장이, 전 국회의장이 흥청을 부르다 망청이 되는 분이 있으니 이는 역사를 제대로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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