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察使(관찰사)
觀察使(관찰사)
  • 송종복
  • 승인 2014.09.04 0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觀:관 - 보다 察:찰 - 살피다 使:사 - 사신

 관찰사는 입법ㆍ사법ㆍ행정 등 막강한 힘을 가졌으나, 지금의 관찰사 ‘도지사’는 행정권만 있을 뿐,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도민의 공복이 돼야 한다.

 관찰사는 입법ㆍ사법ㆍ행정 등 막강한 힘을 가졌으나, 지금의 관찰사 ‘도지사’는 행정권만 있을 뿐,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도민의 공복이 돼야 한다.

 관찰사는 조선시대 외관직(外官職) 문관의 종2품 벼슬로 자기 관할 도에 대해서 민정ㆍ군정ㆍ재정ㆍ형정(刑政) 등을 통괄하는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 외 해당 도의 병마절도사 및 수군절도사도 겸임해, 군사력까지 포괄할 수 있었다. 또한 도내의 수령(부윤ㆍ부사ㆍ목사ㆍ군수ㆍ현령ㆍ현감ㆍ원님ㆍ사또)을 지휘 감독했다. 고찰하면 고구려는 욕살, 백제는 방령, 신라는 군주>총관>도독, 발해는 자사, 고려는 안찰사, 조선은 관찰사, 경술국치(1910) 후는 도장관(道長官), 3ㆍ1운동(1919)부터는 도지사(道知事)라 부른다. 별칭으로는 감사(監司)ㆍ도백(道伯)ㆍ방백(方伯)ㆍ외헌(外憲) 등이있다.

 고려 때는 전국을 5도로 나눴다가 조선초기에는 다시 8도로 나누었다. 1895년(고종 32)에는 전국을 23부(府)로 하다가 1896년에 다시 13도로 재편했다. 13도는 종래의 8도 중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 함경도의 5도를 남ㆍ북도로 나눈 10도와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의 3도를 합쳐 13도라 했다. 그리고 제주도는 1946년에 전라남도에서 분리됐다. 관찰사는 임기는 360일이며, 자기 출신지에는 임명될 수 없는 상피제가 적용됐다. 이는 지방에 거주하는 자기의 친ㆍ인척과 결탁한 변란이나 작폐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1519년(중종 14)에 왕의 위치에서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도를 좌ㆍ우도로 나뉘었고, 경상우도가 경상남도이다. 우도의 감영은 안동에서, 대구(1601), 진주(1896), 부산(1925), 창원(1983)으로 감영(도청)은 옮겨왔으나, 감사의 유허비는 이전흔적이 없으며, 도정의 뜰에는 관헌명이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그동안 경상도의 감사는 고려 635명, 조선 482명, 1910~2014년 51명으로 도합 1천168명이다. 이 중 명망 있는 최충헌(崔忠獻)ㆍ정몽주(鄭夢周)ㆍ이언적(李彦迪)ㆍ유성룡(柳成龍)ㆍ김성일(金誠一)ㆍ이익(李翊)ㆍ박문수(朴文秀)ㆍ조엄(趙儼) 등이 경상도 감사 ‘도지사’를 지냈다. 반면에 일제강점기에 민족반역행위를 한 사람 중 경상남도의 감사는 한 분도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지금의 도지사는 옛 관찰사와 달리 국가로부터 위임된 사무를 관리ㆍ집행한다. 도지사는 직선제로 선출된 임기 4년이다. 따라서 그 권한을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받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음으로써 중앙정부에의 의존성과 예속성을 탈피해 협조체제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지방의회의 조례를 집행하는 수장으로서 고유 업무와 국가위임 업무를 처리하며, 지방의회의 승인을 받아 국가와는 독립적으로 예산을 집행한다. 이같이 수임된 권한을 갖고 눈치코치 볼 것 없이 ‘도민을 위해’ ‘후세를 위해’ 소신을 갖고 과감하게 처리해 주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