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9:20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9.01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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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08)
 또 식당일을 하다가 주인의 돈이 없어져 누명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 사이 아버지의 병은 점점 심해져 나라에서 운영하는 극빈자 요양소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 후에는 외톨이가 되어 식당에서 일을 하며 숙식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얼마간 생활하던 중 갑자기 행복했던 삼천포 시절이 생각났고, 내가 보고 싶어서 식당에서 무작정 뛰쳐나와 버스를 훔쳐 타고 어렵게 삼천포까지 왔다는 것이다.

 영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이 가여운 아이를 도와줘야 하는데…. 내 곁에 있게 하려면 지낼 수 있는 방이 있어야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 데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함께 식사를 한 뒤 영호에게 “오늘 내가 극장에서 일할 동안 밖에 나가 있다가 일이 끝날 무렵에 다시 오너라”라고 말했다. 영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일어섰고 나는 일터인 극장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극장 주택에 사는 사모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어제 너랑 같이 잔 아이는 누구냐”며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일년 전에 우리 동네에서 살던 객지 아이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모님은 “그런 아이를 어떻게 안채에 재울 수 있냐, 돈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쩔건데?”하고 나를 나무랐다.

 극장 사택에는 입장권을 판 현금이 늘 보관돼 있기에 그것을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영호를 다시 이 방에서 재울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걱정이 쌓여갔다.

 시간이 흘러 극장 일이 끝났지만 영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나는 결국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이제 오니, 힘들지?”라며 날 반기셨다. 나는 “아니에요. 어머니, 극장 일은 뭐든지 재미있어요”라며 웃으며 답했다. 어머니는 작은 쪽지를 건네주며 “오늘 낮에 영호가 와서 주고 갔단다”라고 말했다.

 그 쪽지에는 “형, 고마워. 형이 보고 싶어서 왔다가 얼굴을 봤으니 이제 다시 부산으로 간다. 형 잘 살아, 그리고 반드시 훌륭한 만화가가 되어 줘. 내가 출세하면 다시 형을 꼭 찾을 거야. 잘 있어”라고 적혀 있었다. 쪽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간다고 인사라도 했다면 차비라도 주었을 텐데. 얼마나 고생을 할까’하는 생각에 두고두고 가슴 아팠다.

 영호를 만나고 6개월 후,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일년 후에는 우리 식구 모두가 서울로 올라왔다. 그 이후에 영호가 우리 집을 찾아왔어도 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벌써 50년이 지났다. 객지 소년 영호는 그 이후 험한 세파에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은 칠순을 바라볼 터… 아직 살아있을까? 살아 있다면 가족들은, 손주는 존재할까? 손주는 몇이나 될까?….

 내가 보고 싶어 먼 부산에서 버스를 훔쳐 타고, 얻어타며 삼천포까지 와서 얼굴 한 번 보고는 훌쩍 떠나버린 영호. 아직도 그의 눈망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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