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3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31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207)
 극장으로 나를 찾아온 영호는 얼굴이 야위어 있었고, 옷은 남루했다. 그리고 일 년이나 지났는데도 키가 자라지 않고 더 적어진 것 같았다. 그런 영호라도 나는 반가웠다. 영호 더러 “너 어떻게 여기에 왔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영호는 뜻밖의 말을 했다. “형이 보고 싶어 왔어…” 그게 말이 되는 것인가. 영호가 부산에 사는 줄 알고 있는데 멀고 먼 타지에서 친형도 아닌 나를 보고 싶다고 불쑥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영호를 일단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시켜 먹였다. 남루한 모습을 보아 영호가 일 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영호는 타지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 년 전 삼천포 로터리 동네 골목대장 팀들과 어울려 다니던 행복한 시절이 생각 났을 것이다.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 대장인 내가 불쑥 보고 싶어 만사 제쳐 놓고 멀고 먼 여정을 감행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로터리 동네 골목대장팀 멤버는 15여 명 정도다. 성인이 돼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한 번씩 나는 팀원들을 만나보고는 하는데, 그들은 한결 같이 같은 말을 한다. 그것은 “형과 어울려 뛰놀던 어린 시절이 내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감이다. 내 평생에 가장 행복 했던 시절은 고향 삼천포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골목대장 할 때이고 가장 보람 있었던 시절은 한국 최초의 관인 학원 ‘반도 만화영화 학원’을 세워 후배들을 양성할 때이다.

 객지소년 영호는 일찍 자기 생애에 가장 행복 했던 시절이 일년 전 골목대장 시절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극장 야간 영화가 끝나자 갈 곳 없는 영호를 극장 안으로 데려왔다.

 극장 안에는 방이 둘 있는 주택이 있는데, 방 하나는 극장 주인의 여동생 부부가 거주하면서 극장을 관리하고 있고, 또 한쪽 방은 숙직실로 극장 직원들이 다용도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밤에는 비어 있는 방이 있었다.

 나는 그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영호와 함께 극장 숙직실에서 자기로 했다. 그때 나는 영호랑 같이 누워 영호의 부산 생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 년 전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같이 부산으로 가서 처음에는 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겨우 어느 양복점에서 일거리를 맡아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아버지 병이 심해지면서 일을 계속 할 처지가 못 됐다고 한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평생 궂은일을 해 보지 못한 어머니는 끼니 걱정에 견디다 못해 그만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어린 영호는 아버지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 신문 배달도 하고, 여름에는 아이스케키 장사도 하면서 아버지를 부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씩 식당에 가서 잔일을 돕고 했는데, 그곳에는 수입이 고정적이라 생활은 안정적이지만, 십오세 정도의 어린 소년이 어른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하지 못해 한 번씩 주인에게 야단도 맞고 손찌검도 당한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