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炸醬麵(자장면)
炸醬麵(자장면)
  • 송종복
  • 승인 2014.08.27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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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송종복 회장
 炸:작 - 기름으로 튀기 醬:장 - 된장 麵:면 - 국수

 자장면은 1905년 인천의 ‘공화춘(共和春)’에서 처음 만든 세계적인 중국요리이다. 한국도 이같이 외국에 한류음식을 개발해 자장면이상으로 브랜드 함이 시급하다.

 자장면은 작장면(炸醬麵)에서 온 외래어이며, 일명 짜장면, 자장멘, 차오장멘(초장면: 炒醬麵), 자지앙미엔이라 한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자장면’이 표준어로 됐다가, 2011년 8월에 국립국어원이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됐다. 중국 자장면은 단맛이 없고 짠맛이 강하다. 한국식 자장면에 들어가는 춘장이 중국에는 없다. 따라서 요즘은 한국식 자장면이 중국에 넘어가 유행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양세욱의 ‘자장면 전’에 의하면 1948년에 산둥성 출신 화교 왕송산이 ‘영화장유’라는 식품회사를 차렸다. 처음으로 ‘사자표 춘장’에 ‘캐러멜’을 첨가하면서 한국식 자장면을 만들었다. 이후 삼천만의 외식 메뉴로 우리 생활과 문화 속에서 추억을 함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설가 황석영은 ‘누군가 말하기를 자장면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야 어른이 된다는데 우리 또래치고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1960~70년대에는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 자장면을 먹었으며 꽃다발을 든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 화교의 효시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청(중국)나라 장군 오장경(吳長慶) 휘하 군대에 따라온 40여 명의 상인들이다. 1884년 인천에 중국 조계지(租界地: 외국인 마을)가 조성됐다. 1905년 중국 최초의 요리집인 공화춘(共和春: 인천시 중구 선린동)에서 처음으로 자장면을 팔기 시작했다. 이 식당이 번성하다가 1984년에 문을 닫았다. 당시 ‘공화춘’의 붉은색 벽돌 2층 건물로써 건축적 가치와 생활사적 가치를 지닌 근대 문화유산으로 인정돼 2006년에 ‘등록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됐다.

 1945년 광복직후 중국 상인들에게 무역을 금지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화교들은 모국과 연락이 두절됐고, 생존을 위해 요리집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6ㆍ25전쟁의 피해에 미국은 한국에 많은 식품들을 무료로 원조하는데 주로 ‘밀’이었다. 자장면이 한국에 급속도를 펴진 이유는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빨리 빨리에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들 입맛에 맞춰진 ‘철가방’ 때문이다. 또한 경제개발로 인구이동이 많아 간단한 외식에 이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분식이면서도 열량이 높다. 비빔밥 한 그릇의 열량이 550㎉이데 비하면, 자장면 한 그릇은 700㎉ 정도다. 최근 중국집이 2만 4천개로 하루 600만 그릇이 팔리고 있다하니 이제 중국 음식이 아닌 한국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민족도 해외에 700만 명이상 거주하는데 짜장면 이상으로 개발해 한국의 브랜드 음식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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