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1:29 (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26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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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성적표에 ‘수, 우’가 독차지하니 누가 봐도 우등생급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어 그런지 국어 작문 시간은 무슨 글이든 쉽게 글을 쓰게 되고, 또 내 글 쓰는 걸 봐온 국어 선생님이 나를 점찍어 놨다가 ‘수’를 주시고는 한다. 그리고 그림도 타고 난 재능이 있어 그런지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려 제출하면 늘 ‘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학과는 대충 공부하면 ‘우’정도는 받고는 했다.

 세탁소 아저씨 동생분이 그때까지도 충무에서 해양(?)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여름 방학이면 삼천포로 와서 세탁소에서 지내곤 했다. 나는 그 형이 삼천포에 오면 저녁밥을 먹고 세탁소 2층으로 가서 세탁소 형과 같이 놀기도 했다. 이층은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기분이 참 좋았다.

 그 형은 졸업하면 마도로스가 될 거라고 했다. 또 충무의 이야기, 학교 이야기, 깊은 바다 이야기를 들려줘 나는 재미있게 듣고는 했다. 그렇게 세탁소 아저씨 집과 나는 늘 가깝게 지냈고 또 아저씨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늘 잘 대해주시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집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앞집 세탁소에서 ‘펑’하고 큰 통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이 “불이야” 하고 외치면서 급히 세탁소 밖으로 나왔다.

 세탁소 안의 방 한 칸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뛰어 나와 “빨리 휘발유 통에 불이 안 닿게 막아라”하면서 긴박하게 움직였다.

 세탁소에는 작업을 휘발유로 하기 때문에 커다란 휘발유 드럼통이 있는데, 이것이 터지면 바로 앞에 있는 우리 집은 고사하고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될 상황이다.

 소방서를 부를 틈이 없다. 소방서에서 오기도 전에 휘발유 통이 터질 것은 뻔하다.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7~8명의 어른들이 힘을 합쳐 불을 끄기도 하고 휘발유 통에 옷가지에 물을 묻혀 덮고는 했다. 그 덕으로 불을 끄고, 또 휘발유 통을 지킬 수 있었다.

 세탁소는 옷을 다리고 진열하는 넓은 공간이 있고 또 한쪽에는 휘발유 통도 있다. 그리고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설치해 놓고 옷과 휘발유를 같이 넣어 옷을 세탁하는 기계실이 따로 있었다. 그날 아저씨가 기계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데, 어느 손님이 기계실까지 들어와서 담배를 피우면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배꽁초를 땅에 버렸는데, 그만 이 담배꽁초가 바닥에 있는 기름걸레에 떨어져 걸레에 불이 나면서 불이 삽시간에 드라이클리닝 통에 붙어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세탁소는 영업을 못 하게 되고, 나는 얼마간 아저씨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몇 달 후 나는 공원 옆에서 놀고 있는데, 농협 쪽에서 아저씨가 세탁소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를 오랜만에 보는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려고 아저씨 쪽으로 걸어갔다. 드디어 아저씨 바로 앞까지 온 나는 인사를 하기 위해 아저씨 얼굴을 쳐다보고는 깜짝 놀라 생각이 정지되고 온몸이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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