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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의미
1달러 의미
  • 정창훈
  • 승인 2014.08.26 20: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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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대학교 사회복지상담과 교수 정창훈
 이번 여름휴가는 영국 BBC가 2014년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해외 여행지’ 50선에 29위로 소개된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Angkor Wat)를 다녀왔다. 국명보다 앙코르 와트를 품고 있는 나라로 더욱 유명한 캄보디아다. 캄보디아 여행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앙코르 와트로 시작해 앙코르 와트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들의 도시’,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립 공항에 입국할 때 처음 들었고 여행 내내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원 딸라’ ‘원 딸라’였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눈을 묵묵히 쳐다보면서 공항 직원은 1달러를 계속 되풀이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입국할 때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공항 직원에게 1달러를 주면 빨리 입국하지만, 1달러를 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보다 순서가 점점 뒤로 밀리면서 수속 자체가 늦어진다고 하는데, 내가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간 일행들은 공항 직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원 딸라’해서 줬다고 한다.

 1달러, 1천원이 적은 돈일 수도 있고 큰돈일 수도 있지만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설레는 여행을 하는데 1달러를 왜 공무원인 그들에게 줘야 하는지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다. 유독 한국인에게만 요구한다고 하니 부당한 행위라고 맞대응하는 서양인들과 차별 같은 느낌도 있다. ‘1달러를 안 주고 출입국 수속을 밟을 수는 없을까’에 대해 나름의 고민도 해보고 캄보디아에서 사권 친구를 통해서 방법을 찾아보았다. 팁을 주고 안 주고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지만 여권을 내밀면서 수속하는 직원에게 캄보디아어로 ‘속섭바이’(안녕하세요) 라고 반갑게 인사를, 속섭바이 했는데도 계속 ‘원달러’ ‘원달러’ 하면 ‘헤더바이’(왜?)해 보면 어떨까. 아마 기분 좋은 입ㆍ출국이 될 것이다.

 최빈국 캄보디아 거리에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관광지에는 어딜 가나 남루한 옷차림과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그냥 구걸하거나 기념품을 들고 ‘1달러’, ‘1천원’을 외치며 소매를 잡아끄는 아이들이 넘쳤다. 산아제한 정책이 없고 피임에 대한 인식도 정립되지 않아 아이들이 돈벌이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앙코르 톰의 타프롬 사원, 앙코르 톰 등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낯익은 선율도 들을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설치한 지뢰 탓에 손발을 잃은 피해자들이 연주하는 우리 전통 민요 ‘아리랑’은 마치 가해자에게 아픈 과거를 씻어내자며 손을 내미는 진혼굿처럼 들렸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금방 알아차리는 것은 아마 그들의 생존전략 같았다.

 1달러를 외치며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비단 앙코르와트 유적지뿐만이 아니다. 식당이든 길거리든 가는 곳 마다 여행객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1달러를 조르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여행처럼 아이들을 많이 만나고 온 여행은 없는 듯하다. 1달러로 시작해서 1달러로 끝난 캄보디아 씨엠립 여행은 하늘을 닮은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만 기억에 남는다. 하루 1달러를 벌기 위해 늦은 밤, 여행객들이 많이 모인다는 펍 스트리트 거리에서 1달러를 부르짖거나, 페트병을 주워 모으는 아이들의 모습. 마음이 안쓰러워 그깟 1달러 얼마든지 주고 싶다가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낯선 휴대폰을 보며 신기하게 바라보고 웃는 아이들의 촉촉한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더 미안해진다. 구걸하는 현장에도 항상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 1달러를 만져보지도 못했고 눈길 한번 따스하게 마주치지 않았지만 출발하는 버스에 탄 관광객을 향해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브이까지 해 보이는 순수한 아이들은 아주 작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면서 천천히 손을 흔들어 준다. 비록 삶은 가난할지라도 눈빛만큼은 넉넉해 보였다.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즈의 후유증으로 중장년층이 별로 없고 인구의 60%가 30대 초반 이하 젊은 층이다. 5~6년 후 캄보디아는 젊은 층이 이끌어 나갈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난 20대 후반 젊은 여행가이드 타로는 “캄보디아는 지금 가난할 뿐이다. 미래는 모르는 거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 속에서 캄보디아의 미래를 봤다. 많은 변화와 대대적인 개혁이 있을 것이다. 젊은 캄보디아 속에 우리의 기회도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의 젊은 층과 우리가 같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거리에 오토바이만큼이나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대중교통수단인 ‘툭툭(tuktuk)이’. 오토바이에 인력거를 매단 형태인 툭툭이는 시동을 걸면 ‘툭툭’ 소리가 난다고 해 이름 붙여진 전통적인 교통수단이다. 유럽인들로 북적이는 ‘유러피언 거리(European Street)’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한 툭툭이가 줄지어 서 있다. 유러피언 거리는 씨엠 립 강 주변에 있는 야(夜)시장 한쪽에 형성된 곳이다. 영화 ‘툼레이더’(Tomb Raider) 촬영을 위해 씨엠 립에 머물렀던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다녀간 레스토랑 ‘레드 피아노(Red Piano)’에는 작은 젊은 지구촌이 돼 있었다. 자리를 구하지 못해 옆에 있는 분위기 좋고 친절한 카페에서 1달러로도 시원한 생맥주 두 잔을 즐길 수 있었다.

 도반과의 캄보디아 여행은 웅장한 문화유산 앙코르와트를 가슴에 담았음에도 마냥 즐겁지 않았다. ‘원달러’를 외치면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남루한 차림새가 캄보디아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 여행을 하면 할수록 씁쓸한 풍경과 마주 했다. 이미 우리는 지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어디에 살고 있는 누구이든지 그들 공동체의 미래 또한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1달러의 의미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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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2014-11-19 17:06:56
제 블로그 내용과 좀 비슷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