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06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21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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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01)
 155. 신 내린 치과

 박치과에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중앙치과가 있었다. 이 집의 아들 셋 중 아래로 둘은 우리 골목대장 팀이었다.

 삼천포 시내 중앙, 사거리에 넓직한 공터가 있고 이 가운데는 20평 정도의 화단이 있었다. 그 화단에는 복숭아 나무가 있었는데, 봄마다 꽃이 아름답게 만개했다. 그리고 이내 복숭아 열매가 열렸는데, 이 복숭아는 익기 전부터 벌레가 생겨 중간쯤 익으면 파리, 벌, 나비들이 모여들어 더러워서 먹기는 고사하고 보기도 싫었다.

 그 당시는 시중에 파는 복숭아도 열매 안에 애벌레가 나와 사람들은 밤에 먹을 때는 불을 끄고 먹고 낮에는 눈을 감고 먹었다. 즉 벌레도 같이 먹었다는 얘기이다.

 화단 옆에는 지름이 2m 정도의 우물이 있었는데, 키가 크고 잘생긴 중앙치과 원장님이 그곳에 잉어 4~5마리를 매일 먹이를 주며 키웠다.

 어느 날 어떤 장사꾼이 “진돗개 사시오”하면서 갓 낳은 강아지 몇 마리를 들고 다니며 로터리 동네로 왔다.

 그때 중앙치과에서 일하던 조수 형이 강아지 한 마리 사서 키웠는데, 이 강아지는 6개월쯤 되자 귀가 빳빳이 세워지고 꼬리가 위로 말려들면서 아주 씩씩한 진돗개로 자랐다

 중앙치과에서는 그 개를 ‘진도’라고 불렀다. 가끔 로터리로 나와 아이들과 놀 땐 진도도 우리와 함께 뛰어놀았다. 그런데 진도는 한 번씩 내 혼을 쏙 빼놓고는 했다.

 어느 날 중앙치과 조수 형이 슬그머니 내 뒤로 와서는 두 손으로 내 허리를 감고 번쩍 들고는 진도 앞에서 나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진도 씩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멀쩡하게 있던 진도가 갑자기 나를 향해 큰 입을 벌리고 덤벼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잘못하면 내 팔이나 갈비뼈가 진도의 큰 입에 물릴 것이다.

 나는 너무나 무섭고 놀란 마음에 달려드는 진도를 향해 왼쪽 주먹으로 진도의 왼쪽 턱을 가격한다. 그러면 진도는 턱을 맞고 떨어졌다가도 이내 또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오른쪽 주먹으로 진도의 오른쪽 턱을 갈긴다. 그러면 진도는 또 내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진다. 그러길 20번 정도, 내 기운이 다 빠질 무렵이면 조수 형은 나를 내려놓는다. 그러면 진도도 그제야 공격을 멈춘다.

 나는 위험 속에서도 사나운 개에게 물리지 않고 내 힘으로 막아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그때를 생각하면 진도는 진심으로 나를 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인과 함께 장난을 쳤던 것 같다. 정말 진도가 나를 물려고 덤볐다면 키 작은 중학생의 몸이 성했겠는가. 조수 형은 나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는지 진도와 함께 종종 내 혼을 빼놓고는 했다.

 중앙치과의 집은 방이 4~5개 더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출타한 날이면 우리 골목대장 팀은 그 집으로 몰려가서 술래잡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놀았었다. 그때만 해도 중앙치과는 참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중앙치과에는 암운이 드리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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