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1:57 (화)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20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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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로터리 동네 사람들

 1950년대 삼천포시 선구동 로터리 동네. 그 시기는 대한민국이 해방과 6ㆍ25 전쟁을 겪으면서 빈곤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궁핍을 모르고 살았다. 모두들 반듯한 기업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았으며 자녀교육에도 정성을 들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 동네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결성한 골목대장 팀은 7년이 지난 후도 그 멤버 그대로였다.

 나는 동네에서 아이들 대장이기도 했지만 어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수창의원이나 운봉과의 우정은 이미 이야기했지만, 그 외에도 두루두루 좋은 감정을 맺으며 살았다.

 우리 골목대장 팀의 막내 ‘이 인’은 아버지가 치과 의사였다. 이층 집에서 ‘박치과’라는 간판을 달고 환자를 진료했었다.

 그리고 원장님은 부인이 둘이었는데 큰 부인은 서동 이층 집에 살았고 둘째 부인은 박치과 건물에 살았다. 슬하로 각각 남매가 있었고, 큰 부인의 아들은 사천 비행장에 근무하는 파일럿이었다.

 이분은 공휴일만 되면 박치과에 와서 묵고 다음 날은 공기총을 들고 새 사냥을 나갔다. 그럴 때마다 자기 동생 인이도 있으면서 꼭 나를 찾아와 같이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 분은 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았지만 자기 동생이 인이였기 때문에 나도 ‘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새를 잡으로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각산 밑이나 시내 변두리의 농가로 다녔다. 그곳은 집집마다 나무들이 많았고, 나무로 된 울타리 같은 곳에 새가 많이 앉기 때문이다.

 형이 공기총으로 새를 잡으면 나는 땅에 떨어진 새를 주워 오는 역할이었다.

 총을 얼마나 잘 쏘는지 백발백중이다. 무슨 새든지 공기총을 한 방 맞으면 날아가다가도 그대로 꼬꾸라지는게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었다. 한 번씩 제법 큰 비둘기를 맞추면 그냥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퍼덕이다 떨어지곤 했다.

 주로 참새를 많이 잡았지만, 참새만 한 크기의 이름 모를 산새도 많이 잡았다. 그러다 형이 두 번을 쏘았는데 연속으로 맞추지 못하면, 총에 문제가 있다면서 2m 전방에 작은 타켓을 정하고 그것을 쏘면서 총의 조준대를 바로 맞췄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해가 질 때까지 60~70마리 정도 잡게 된다. 그러면 헤어질 때쯤엔 형은 나에게 20마리 정도 넘겨줬다.

 정말 인심 좋은 형이다. 나는 즐겁게 놀았는데 새까지 얻으니 너무나 고맙고 신이 났다. 그런 날은 저녁 반찬에 참새구이가 나왔었다. 한 사람당 2~3마리씩 먹을 정도의 풍족한 양이었다.

 참새구이는 동글동글한 살덩이가 무척 맛있었다. 그때 그렇게 여러 번 먹어 봤기 때문에 그 모양이나 맛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참새구이는 금세 가짜라는 것을 알아본다. 형은 승승장구해 나중에는 장군까지 진급한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참새 사냥을 나설 때 언제나 나를 찾던 고마운 형. 참새구이 집만 지나면 총을 잘 쏘던 파일럿 형이 생각난다.#[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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