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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발따라…지리산 와운 옛길
길따라…발따라…지리산 와운 옛길
  • 김봉조
  • 승인 2014.08.20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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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돼 걷는 몽상에 빠지는 신비로운 코스
뱀사골 계곡 합수 반선에서 마을 돌아 6㎞ 왕복 거리
 여름 끝자락에 더위를 날릴 곳을 소개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옳다구나” 맞장구를 쳐줄 곳을 고민하게 된다. 30년 넘게 산을 다니고, 그 절반의 시간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신하지만 딱히 어디라 바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참여할 사람들의 연령과 체력을 고려해야 하고 트랙의 난이도를 검토해 루트를 선택하는 게 안전 트레킹의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여기, 보석 같은 거대한 산국의 나라에 숨은 옛길과 자연마을에서 잠시 어머니의 품 같은 지리산 골짜기 속으로 정겨운 트레킹의 문을 열어 보자. 산 꽤나 다닌 사람들이 지리산하면 천왕봉을 말하고, 또 칠선계곡을 회상하며, 나름 어디를 몇 번 다녀왔다고 자랑하곤 한다. 그러나 막상 몇몇 지명 외에는 지리산의 웅대함에 걸맞은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연결된 둘레길만 해도 무려 800여리나 된다. 산세가 부드럽고 넉넉하다보니 그 속에서 7천여 종이 넘는 생물군이 서식하고 그를 터전삼아 500여 개의 자연마을에서 우리나라 산지 인구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다.

 자, 앞으로 지리산의 수많은 능선과 골짜기를 품은 자연 경관을 포인트로 그 속에 질퍽한 삶이 남겨준 역사, 문화를 배우고 지리산학을 접하고 논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재미있게 함께 열어갈 기회가 있으리라 여기고 슬슬 들머리부터 걸어 보겠다. 초입은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달궁 계곡이 합수되는 반선에서 시작해 천년송으로 유명한 와운 마을을 돌아 6㎞를 뱀사골 계곡과 함께 왕복 하는 트레일이다.

▲ 트레커들이 ‘할머니 소나무’라 불리는 지리산 ‘천년송’에 오르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뱀사골 출입 통제소가 다리 끝부분 중앙에 위치해 차량의 출입을 체크하며 탐방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여느 관리공단 입구와는 조금 색다른 모습이다. 다리가 끝나는 우측에 ‘지리산 북부 관리사무소와 전적 기념관’이 있어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잠시 점검도 가능하다. 많은 인원을 인솔 때 트레킹 시작 시점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반드시 일행을 체크하고 함께 움직이길 권한다. 이유는 100m 진행 후 좌측 뱀사골 제2야영장 입구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야 숨어있는 와운 옛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이 옛길에 대한 아무런 안내가 없기에 ‘꼭’ 이점을 숙지해야 한다.

 다리 좌측으로 내린 넓은 산책로와 우측 야영장을 버리고 곧장 직진한다. 훤하게 열렸던 들머리 탐방로는 사라지고 우거진 수림 아래 돌이끼가 숨 쉬는 옛길이 열린다. 우측에 야영장을 끼고 완만한 오솔길을 내딛으면, 뱀사골 계곡 하단부의 풍부한 수량과 짙은 원시림이 어우러져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옛 사람이 돼 걷고 있는 몽상에 마냥 신비로움에 젖게 된다. ‘와운 옛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와운 마을에 사람이 거주하면서 생성된 길이라 추정하고 있다. 10분여 간 걸으면 간간히 우측 간이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탐방객과 야영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사라지곤 한다. 지척에 있던 계곡의 물소리를 약간 멀리하고 높지 않은 고도를 조금씩 올리며 잠시 쉬어갈 시점에 사람의 손길이 오랜 샘을 만난다. ‘참샘’이라 불린다. 얼핏 보기에는 고여 있는 샘 같지만 돌 틈에서 배여 나오는 물맛이 달고 맛있다.

 한사람 정도 비껴갈 수 있는 등로를 살짝 감아 오르면 오래된 소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고개를 만나는데, 여기가 옛 성황당이 있었다 전하는 ‘북두재’이다. 반선에 다리가 놓아지기 전에는 여기서 싸래골을 통해 외지로 소통되는 길이 있다고도 한다. 여기까지 45분 전후 걸린다.

 북두재를 넘어서면 우측 아래에 ‘정이남’이란 지명을 가진 마을을 우측에 두고 밭 언저리를 끼고 5분여 걸으면 시멘트 도로를 만난다. 좌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구름도 누워 쉬어 간다는 와운 마을’이다. 멀어졌던 계곡 물소리를 다시 가까이 느낄 때 쯤, 좌측 작은 언덕배기 계단을 오르면 와운 마을의 동신목이며 수호신인 천연기념물 제 423호 ‘천년송’이 있다.

 와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천년송은 할머니 소나무라 불리며 수령이 700년을 넘어서고 있다하며, 그 위에 할아버지 소나무도 올곧은 자태로 지리산을 지키고 있다.

▲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달궁 계곡이 합수되는 반선에서 천년송으로 유명한 와운 마을을 돌아 6㎞를 뱀사골 계곡과 함께 왕복하는 지리산 와운 옛길 트레킹 코스.
 천년송에서 조망되는 지리산은 북서쪽으로 심마니능선, 동쪽으로 삼정능선, 남쪽으로 와운골을 타고 오르면 닿는 명선봉이 속살을 파고들어 지척에 있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와운 마을에는 현재 10여 가구가 민박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마을에서 ‘누운골 산장’을 부인과 함께 운영하는 이완성 씨는 부친이 계시던 이곳으로 20년 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고 있으며, 와운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 한 것은 1천300년 전이라 귀뜸한다.

 또 그는 오래된 와운 옛길이 환경부와 남원시의 지원으로 많은 탐방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곧 정비 된다고 전한다. 이씨가 운영하는 누운골 산장에는 지리산에서 나는 나물을 재료로 한 산채 비빔밥부터, 도토리묵, 파전,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 토종닭 백숙, 등 지리산 향이 듬뿍나는 메뉴가 입맛을 당긴다.

 지리산 깊숙이 들어, 눈에 넣고, 귀로 듣고, 머리에 담고, 맛있는 음식을 채웠으면 돌아가는 길에 휘파람 소리가 나야 즐거운 트레킹이라 추억에 남지 않을까? 와운 마을을 뒤로하고 내리막 시멘트길을 10여 분 걸으면 뱀사골 주계곡과 나눠지는 와운교에 닿는다. 다리를 지나면 우측 계곡으로 ‘자연 관찰로’ 데크가 계곡을 발 아래 두고 ‘오룡대’를 맛배기로 보여준다. 오룡대에서 시작된 자연 관찰로에는 선인대를 비롯한 넓은 소들이 뱀사골의 볼거리를 연이어 보여주며 출렁다리와 바위 전망대의 아기자기함도 곁들여 걷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기에 충분 할 것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 2시간 30분, 비록 짧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모르나, 함축된 내용면에서는 어디에 소개해도 결코 뒤지지 않은 멋진 길이다.

 자연 관찰로가 끝나는 지점, 트레킹의 시작이였던 지리산 북부 사무소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지리산 전적 기념관’을 둘러보는 건 덤이다. 1층에는 지리산의 자연 경관을 담은 전시물이, 2층에는 한국 전쟁 전후 지리산에서 벌어진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 사이의 전투의 기록과 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거기에는 20세기 열강들의 대립에 아무것도 모른 채 반역자가 된 이들의 아픔이 누구의 몫인지 묻지도 못하고 지나고 있다. 굳이 지리산이 아니라도 산과 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향 같은 곳이고, 심신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생명의 뿌리 같은 곳이다. 상처받은 이는 치유하고, 고달픈 이들이 언제나 쉴 수 있는 모태 같은 산하를 우리의 근원으로 공유하고 지켰으면 한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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