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3:41 (금)
진통제 골라 먹어라?
진통제 골라 먹어라?
  • 조성돈
  • 승인 2014.08.19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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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진통제 아무거나 먹으면 ‘독’ 몸 상태에 맞게 골라 드세요.”

 이달 초 MBC에서 방영한 내용이다. 만성적으로 두통이나 생리통을 겪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티는 경우가 많은데, 진통제는 몸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골라 써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날 땐 타이레놀로 알려진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적합한 반면, 근육통과 관절염의 경우 ‘부루펜’ㆍ‘애드빌’ 같은 ‘이부프로펜’ 성분이 효과적이며, 아이들이 타이레놀 계열로 열이 안 내리면 ‘부루펜’ 계열 진통제로 바꿔야 한단다. 부작용도 피하고 약의 효과도 빨리 보고 싶다면, 자신의 증상과 몸 상태에 맞게 진통제도 잘 골라서 먹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앵커의 설명은 황당의 도를 넘어서, 수상쩍기까지 하다.

 ‘아세트아미노펜’은 60여 년 전 미국에서 개발된 타이레놀 단일제제의 상품으로, 인체 내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의 생합성을 방해해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세트아미노펜’의 심각한 부작용이 알려져, FDA는 간 손상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섰고,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우리나라에선 일반의약품) 우리나라에선 지난 4월, 식약처로부터 어린이용 타이레놀 현탁액에 대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는데, MBC 방영이 매출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관련 제약회사들의 언론작전으로 충분히 의심되는 대목이다.

 근육통과 관절염의 경우 ‘이부프로펜’을 권하지만, ‘이부프로펜’ 역시 그 부작용은 ‘아세트아미노펜’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다. 위장장애ㆍ위장출혈ㆍ시각 이상 등 부작용은 끝이 없다.

 두통약이 오히려 두통을 불러온다는 미국에서의 대규모 조사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그래서 미국 ABC방송과 뉴욕 타임스 등도 두통약이 만성두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적이 있다. 당시 가톨릭대 의대 문동헌 교수 등 국내 의학자들이 나서 조사한 결과도 동일했다. 즉 만성두통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10명 중 8명이 게보린, 펜잘, 뇌신 등 진통제 복용으로 인해 두통이 악화됨을 확인했던 것이다.

 ‘피린계’ 약물의 의존성ㆍ출혈ㆍ수분저류ㆍ위장장애는 물론이고 과립백혈구감소증에 의한 사망위험이 지적돼 약국판매가 금지되자, 이번에는 ‘비피린계’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비피린계’ 진통제인 ‘페나세틴’은 국내에서 대량으로 생산 판매되고 있다. ‘페나세틴’은 현재 극약으로 분류돼 있지만 정부는 규제하지 않는다.

 ‘비피린계’ 약물도 안전하지 않음이 곧 드러났다. ‘비피린계’의 ‘아세트아닐리드’는 적혈구와 결합해 산소결합을 방해하기 때문에, 산소결핍증 등 무서운 부작용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드디어 ‘아세트아미노펜’이란 것이 등장한다. 진통제 중에서 이 성분을 주성분으로 하는 약만 ‘타이레놀’을 비롯해 수십 종이 나와 있다. “이제 속 쓰림 없이 보다 강력하고 안전하게 두통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고 거짓 선전을 하면서.

 부작용이 밝혀지면 사라지고 다른 진통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오래지나지 않아 다시 부작용이 밝혀지고 ‘새로운’ 진통제가 나타난다. 그 약은 또다른 ‘새로운’ 진통제가 나타날 때까지 약방에 진열돼 먹잇감을 기다린다. 한 번 걸려들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먹잇감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진통제 숨바꼭질을 보고 있노라면, 대부분 약들의 경우처럼, 부작용 때문에 이리저리 내몰리다 사라지든지, 아니면 포장을 바꾸는 등 눈치를 보아가며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처량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처량함 뒤에는 목숨을 노리는 끔찍한 부작용이 있으니 동정이 가지 않음은 물론이다.

 진통제를 자주 복용하면 뇌에서 통증을 막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점점 엷어져 신경반응이 더 예민해진다. 그래서 신경에 염증과 흥분반응이 잘 생기고 뇌혈관이 확장되면서 통증 유발 물질들이 더 많이 분비된다. 이 때문에 점점 자주, 점점 강한 통증이 생겨나고, 더 많은 진통제를 삼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제대로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무수히 나와 있다. 방송이나 언론은 제약회사들의 로비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연구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감시야말로 언론의 본디 사명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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