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5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18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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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98)
 152. 찢어버린 비밀 서류

 장철이 눈을 떴을 땐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옆에 군의관이 한 명이 장철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리와 팔에 붕대가 감겨있는 것을 보니 정신을 잃은 사이에 구출돼 치료를 받은 것 같았다.

 지켜보던 군의관은 “정신이 좀 드시오?”라고 말을 건넨다. 장철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앉았다. 가져온 서류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고, 인민군 대기소에서 신고 온 구두는 침대 아래 놓여 있었다. 장철은 두 가지를 확인하고는 숨을 돌렸다.

 곧 의무실에 다른 사병이 들어오더니 군의관에게 무엇인가 전하고 나간다.

 군의관은 장철에게 “움직일 수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장철은 군의관이 왜 그러는지 눈치를 채고 “예, 걸어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군의관은 “그럼 본부로 가십시다. 부대장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의무실을 나선다. 장철은 구두를 신고 서류를 들고는 그를 따라 본부로 향한다.

 본부에는 대장과 장병 서너 명이 앉아 있다가 장철이 들어서자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맞이했다. 장철은 대장 앞으로 다가갔고 그 옆으로 다른 장병이 일렬로 늘어섰다.

 대장은 자기 앞에 멈춰선 장철에게 “수고했다, 장 대원”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는 “송충식 대원은 어떻게 되었나?”하고 물었다. 장철은 고개를 숙이며 “강가에서 낙오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대장은 “안됐구나”라고 말하며 장철에게 한쪽 손을 내민다.

 장철은 대장에게 비밀 서류를 건네준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임무 수행을 잘해냈다”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나 비밀 서류를 건네받은 대장은 서류를 펼쳐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찢어버린다.

 이 모습에 장철은 너무나 놀랐다.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것 때문에 송충식은 목숨을 잃었고 자기는 가까스로 살아왔는데… 어이가 없었다. 장철이 정신없어하는 사이 대장은 장철의 구두를 가리키며 “장 대원, 구두를 벗어주게”라고 말한다. 장철은 구두를 벗어 대장에게 넘겨 준다. 구두를 건네받은 대장이 구두 굽을 힘껏 비틀자 그 속에서 작은 필름 통 하나가 튀어나온다. 남은 구두의 굽에서도 필름 통이 나왔다.

 장철은 뒤통수를 야무지게 맞은 듯 멍해졌다. HID는 정말 무서운 존재다. 자기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치솟는다.

 목숨을 걸고 이북 땅까지 가서 임무 수행을 하고 왔지만, 알고 있는 사실은 단지 북한의 이름 모를 인민군 대기소에 가서 그곳에 있는 서류와 구두를 바꿔 신은 것뿐이다.

 자기는 어느 부대에서 파견됐는지, 무슨 임무인지, 강을 오갔던 배는 어느 소속의 배인지, 대기소에 서류와 구두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심지어는 구두에 중요한 필름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만약에 송충식이 죽지 않고 생포되었다 한들 인민군은 그에게서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HID의 치밀함에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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