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復節(광복절)
光復節(광복절)
  • 송종복
  • 승인 2014.08.13 2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光:광 - 빛나다 復:복 - 다시 節:절 - 제도

 일제강점기(35년)에는 ‘순국선열’, 광복이후는 ‘호국영령’이라 한다. 광복기념탑에서 ‘호국영령’을, 충혼탑에서 ‘순국선열’ 또는 ‘순절’이란 용어는 가심님을 욕되게 하는 짓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이 항일독립투사 및 UN 연합군에게 항복한 날이다. 이날을 한국은 광복절, 북한은 해방절, 일본은 종전일이라 한다. 처음에는 남ㆍ북한이 ‘해방절’이라 했다. 그런데 1974년도 첫 국정국사교과서는 ‘해방’이라 쓰다가, 그 후 1978년부터는 ‘광복’이라 썼다. 북한은 지금도 ‘해방기념일’이라고 한다. 제헌국회에서 1949년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에 4대 국경일을 정했다. 즉 4대 국경일은 ‘헌법공포기념일’, ‘독립기념일’, ‘삼일절’, ‘개천절’이다.

 따라서 ‘독립기념일’이 오늘날 광복절이다. 이 광복절을 1945년 일제총독부로부터 정권이양 때는 ‘기념행사’로, 1946년은 ‘제1회 해방기념일’로, 1947년은 ‘제2회 해방기념일’로, 1948년은 ‘정부수립선포식’으로, 1949년은 ‘제1회 독립기념일’로, 1950년은 ‘광복절’로 거행했다. 그 후 1951~1953년 6ㆍ25전쟁 중에는 ‘해방절’로 하다가 1954년 8월 15일부터 오늘까지 ‘광복절’ 명칭으로 거행하고 있다.

 따라서 광복절은 6종의 명칭이 있었고, 광복절 노래도 2종이 있었다. 광복절 노래는 정인보가 작사했다. 즉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중략),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생략). 가사에 ‘이날이 사십 년’을 보면 1910~50년으로 40년이 되니 1950년에 이 가사를 작사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전에는 광복절 노래가 없고 그 대신 ‘해방행진곡’이 있었다. 해방(광복)이 되자 부산에서 윤인구(부산대학교 초대총장)의 요청에 금수현(경남여고 교감: 김해군 가락면 출신)이 1946년에 ‘8월 15일’ 이라는 행진곡 작곡했다. 죽음의 쇠사슬 풀리고 자유의 종소리 울린다. 삼천만 가슴에 눈물이 샘솟고 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왔는 날. 아! 아! 동무야, 그 날을 잊으랴. 우리의 생명을 약속한 그 날은 8월 15일, 8월 15일이었다.

 순식간에 경남에서 주축이 돼 학생들은 등하굣길에, 술집에는 젓가락 장단에 맞춰 이 해방의 노래가 순식간에 전국에 펴졌다.

 이의 ‘해방과 광복’ 및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구별 못 하고 있다. 해방은 여타국에 시켜준 것이고 광복은 자국민의 독립이니 우리는 ‘광복’이라 해야 한다. 또한 ‘순국선열’이란 왕조시대의 왕권탈취에 항거하다 목숨 바친 자를 말하고 ‘호국영령’은 민주화 시대의 국권탈취에 항거하다 목숨 바친 자를 말한다. 임란과 호란의 왕권시대 호국에 목숨 바친 자는 ‘순절’, 왕권이 없던 일제강점기(35년)에는 ‘순국선열’, 국권 인수의 광복 후는 ‘호국영령’이라 한다. 이를 구별 못 함은 가신님을 욕되게 하니 언행을 삼가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