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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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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94)
 장철이 술상을 엎고 아가씨에게 고함을 지르자, 마담이 파출소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고 출동한 순경 두 사람은 장철에게 신분증을 보자고 한다. 순경들은 장철에게 나온 붉은 HID 신분증을 보고 기겁한다. 그 모습에 장철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난동을 부린다.
 답답한 마담은 순경들에게 “저 건달 놈 잡아가지 않고 뭐 하고 있소?”라며 다그친다. 순경들은 어쩔 수 없이 군 헌병대에 “군인이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전화를 한다.
 헌병이 오기 전까지는 순경이 장철을 달래면서 붙잡고 있다. 그러길 얼마 후 헌병들이 지프차를 타고 술집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장철의 신분증을 보고는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장철을 차에 태우고 술집에서 나온다. 마담은 사라지는 차에 대고 ‘퉤’하고 침을 뱉는다.
 옆에서 그 상황을 구경하던 동네 친구가 이 사실을 나에게 알려줬다. 나는 속으로 ‘잘됐다.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거다’하고 통쾌해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직후 장철이 내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놀란 나는 “아니 형, 헌병대에 끌려갔다더니 어떻게 나왔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철은 목에 힘을 잔뜩 주며 “임마 내가 누구냐, 헌병들도 함부로 못 하는 사람이다. 나를 태우고 녹번동 사거리까지 가서는 ‘상사님 다시 그 술집으로 가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노십시오’하면서 내려 주더라”라고 말한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사건 후 대북 안보 강화정책으로 나라가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안보 부대의 기세는 대단했다.
 장철의 부대 훈련소는 파주 인근 야산에 있었다. 휴전선과 인접해 있는 파주 시내는 여러 부대의 군인들이 집합했었다. 그 군인 중에서는 육군보다 해병대가 강했고, 해병대보다는 특수부대가, 이들 특수부대에서도 HID는 더 강했다.
 150. 병영 안의 생활
 어느 부대든지 훈련이 중요하다. 훈련을 거쳐야 군인 행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HID 같은 특수부대의 훈련은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넘어 생존이 직결된 훈련이었다. 모래를 넣은 자루를 발목에 걸고 뛰는 연습, 쇠 막대기 하나로 온갖 자물쇠를 여는 훈련, 야간에 산길 타기, 나침판으로 지도 보기, 이북말 하기, 단도 던지기 등 살인과 침투, 생존의 훈련이다.
 부대의 훈련에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 돌아 와야 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사지에서 생존법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힘든 훈련에 300명 중에서 이제 50명 정도는 보이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갈 시기, 어느 날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비상벨이 울렸다. 대원들은 모두 연병장으로 모여 길게 두 줄로 정렬해 섰다. 그들 앞으로 부대장과 서너 명의 장교가 걸어 나와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본다. 그런 후 두 대원을 차출한다. 차출된 두 대원은 장교들을 따라 사라지고, 대원들은 다시 숙소를 돌아갔다.
 그날 차출된 대원들은 이북으로 밀파되는 것이다. 그 후 수시로 이런 일이 생기면서 대원들이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차출된 대원이 자기는 죽어도 북한으로 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버티자, 간부들이 그를 불명예제대를 시킨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철이 다른 한 대원과 함께 차출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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