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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離娘(아리랑)
我離娘(아리랑)
  • 송종복
  • 승인 2014.08.06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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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我:아 - 나 離:리 - 떠나다 娘:랑 - 아가씨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부역에 끌려온 남자들이 집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며 ‘내 낭자와 헤어 졌구려’라고 부른 노래인데, 이는 일제가 조선을 강탈했다는 비유의 노래이다.

 아리랑은 유래는 삼국시대라 하고, 혹자는 인도 야유타국 허황옥이 ‘아리’지방을 떠나면서 지은 가사가 아리랑이라고도 한다. 또는 밀양 영남루에 얽힌 아랑(阿娘)의 전설에서 기인한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문헌에는 1790년 이승훈의 ‘만천유고(蔓川遺稿)’의 ‘농부사(農夫詞)’의 ‘아로롱 아로롱 어희야(啞魯聾 啞魯聾 於戱也)’가 지금의 아리랑 후렴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편, 1865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막대한 돈을 징수하자 백성들이 ‘아이룡(我耳聾-차라리 내 귀를 어둡게 해 달라)하면서 불렸다’는 설과, 부역에 끌려온 남자들이 집에 둔 아내를 그리워 아리랑(我離娘- 내 부인과 이별하구나)한 데서 유래도 찾는다.

 1900년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 고종은 밤만 되면 민영주에게 사당[寺?:가수]을 불러 ‘아리랑타령’을 부르라고 했다. 1926년 무성영화(無聲映畵) ‘아리랑’은 나운규가 편곡하고 이상숙이 불렸다.

 이때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 가고 동냥의 쪽박이 웬 말인가’라는 가사에 문제는 됐지만, 일제에 원한이 많은 우리민족의 희망과 삶의 절규를 연상시킨다는 것에 대박이 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아리랑은 지구촌 곳곳에 울려 펴졌고 1989년 북경아시안게임의 남북단일팀에서, 1991년 4월 일본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2001년 시드니올림픽 대회에서, 2002년 한ㆍ일월드컵대회 때 ‘아리랑’이 울려 퍼져 국제적인 노래가 됐다.

 2003년 필자가 중국 산동성 제정대학교 교환교수로 있을 때 학생들의 제안으로 강의할 때 마다 3분간 ‘아리랑’을 합창한 것을 회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2004년 문화콘텐츠에 아리랑 종류가 149곡으로 집계됐다. 즉 서울에 10곡, 강원도에 24곡, 충청도에 35곡, 경상도에 11곡, 전라도에 12곡, 제주도에 3곡, 북한에 25곡, 일본에 6곡, 중국에 13곡, 미국에 4곡, 러시아에 3곡, 독일에 3곡이 있다.

 이제 아리랑은 국제적인 노래로써 지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한국의 서정민요’로 등재됐다. 최근 북한도 아리랑을 인류무형유산 등재신청 중에 있으며, 이에 등달아 중국도 조선족에 전래하는 아리랑을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제 ‘아리랑’하면 애국가 이상으로 세계적인 브랜드임을 다시 한 번 자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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