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1:42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0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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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90)
 화장실 냄새는 고약했지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2~3시간을 버티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 들어온다. 숨어있는 두 사람은 긴장했다. 다행히 베트콩은 아니었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바지를 내리고 앉더니 용변을 보기 시작한다. 큼직한 것이 통으로 떨어지자 통 속의 오물이 두 사람의 얼굴까지 튕긴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남자는 용변을 다봤는지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위에서 떨어진 것이 통 속의 오물을 몇 번 휘저어 놓자, 아까보다 몇 배나 더 격한 냄새가 풍겼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두 사람은 화장실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니 어둠은 사라지고 뿌연 안갯속에 어스름한 형태들만 보였다.

 여인은 그대로 나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만 장철이 문제이다. 장철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에 흙먼지를 바르니 그를 적군으로 쉽게 구별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총은 주위에 짚을 모아 감싸고 사람들 눈을 피해 걷기 시작했다. 한 번씩 주민들이 지나고 지나는 베트콩도 아무 의심 없이 스쳐 갔다.

 그때 개 한 마리가 두 사람 몸에 밴 화장실 냄새를 맡고 계속 따라붙으며 코를 실룩거렸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개를 쫓아버리기 위해 헛발질을 해댔다. 그런데 이 개는 도리어 귀를 바짝 세우더니 짖기 시작했다. 낭패다.

 두 사람은 개를 피하고자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럴수록 더 심하게 짖으며 따라왔다. 그러자 이 개 소리를 듣고 멀리 있던 다른 개도 짖으며 뛰어오고 있다. 사태가 이렇자 주위 사람들이 두 사람을 주시했고, 또 베트콩 한 명이 장철 쪽으로 달려온다. 곧 주민도 모이고 베트콩도 서너 명 몰려왔다.

 사태가 심각해 졌다. 이제 위장은 끝난 것이다. 그냥 잡히든지 저항을 하든지 해야 한다. 그때 하늘에서 ‘쉬익’하고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콰광’하며 폭탄이 터졌다. 모두 놀라 몸을 움츠리며 안전한 곳을 찾아 달려갔다. 장철도 그 틈을 타 으슥한 곳으로 여인을 끌고 숨어들었다. 폭탄은 계속 날아들고 집 한 채, 한 채 폭탄을 맞고는 부서지고 있다.

 멀리 있는 미군 포부대에서 폭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 명호부대 3대대가 마을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김상식 특수 요원 대장이 춘장을 구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공로는 장철에게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장철이 왜 무리에서 벗어났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철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장철이 살아있다고 해도 그를 구출하러 다시 마을로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대는 장철의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장철은 마을에 남아있으면 결국은 폭탄을 맞고 베트콩과 같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한다.

 두 사람은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오는 사이로 뛰기 시작한다. 이따금 베트콩이 쏜 총알이 귀 옆으로 스쳐 간다. 조금만 더 뛰면 정글이다. 그곳을 향해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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