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3 03:45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30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186)
 144. 불꽃의 사나이

 소년시절의 나는 골목대장 팀과 게임을 하며 놀기도 하고, 또 친형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공부벌레였던 우리 형은 친구가 많지 않아 덕남, 장철(가명) 형 이렇게 두 명 정도였다.

 장철 형은 한 살 차이라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지만, 형과 같은 반 친구여서 꼼짝없이 평생 형 대접을 하면서 살아야 했다.

 장철 형의 할아버지인 장주사님은 일제강점기 때 사천에서 땅이 가장 많았던 분으로 그 땅에서 수확되는 쌀이 일년에 천석이 된다해서 사람들은 그를 ‘천석꾼’이라 불렀다.

 장철의 아버지는 나라가 해방되자 조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귀국선을 탔다가 침몰 사고로 타계했고, 그 후 어머니가 일본으로 떠나버려 장철이 형은 하나 있는 형과 함께 천석꾼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부모 없이 자란 장철 형은 인자한 우리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 어머니”라면서 무척 따랐다.

 장철 형은 공부보다는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중에는 권투를 좋아했다. 고교 시절에는 선러로 뽑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늘 권투 글러브를 가지고 다녔고, 친구를 만나면 글러브를 끼워주고 같이 권투를 하거나 다른 친구들끼리 시합을 시켰다.

 장철 형은 내가 친구 상호랑 같이 있을 때 마주치면 꼭 권투 글러브를 끼워 한 판 붙이곤 했다.

 나랑 상호가 권투를 하면 서로 비슷하다가도 한 번씩 기회를 잡아 대여섯 번씩 연타를 날려 상호의 정신을 멍하게 만든 적이 있었는데 정말 미안했었다.

 우리 식구가 서울로 올라와 불광동 덕박골에 정착을 하자, 장철 형도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고, 옆 동네에 방을 얻어 살면서 우리 집과 꾸준히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장철 형이 입대하게 되고 또 복무 중 1967년에 월남전에 파월병으로 지원하게 된다.

 장철 형은 맹호부대에 배치받아 동기 700여 명과 강원도 화천 오금리로 가서 한 달 동안 훈련을 받았다. 그 후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서울로 거쳐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부산에는 다른 부대에서도 모여든 파월병이 2천명이나 되었다. 수송선은 미군 소속으로 길이 120m, 폭 60m의 초대형 배였다.

 그날 파월 병사 환송식이 있었다. 병사들의 식구, 관계자 등 많은 환영객이 모였고 또 군 관계자, 정부요인, 국회의원도 환송식에 참여했다. 이렇게 파월병을 대대적으로 환송하는 네 번째 행사였다.

 환영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파월병사들에게 “나라와 세계평화를 위해 힘써 달라”고 당부도 하고 “건강하게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오라”고 격려도 했다. 환영 행사가 끝나고 다음 날 파월병을 태운 수송선은 9일이나 먼바다를 가로질러 맹호부대 사령부가 있는 베트남 궤논항에 도착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