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5 21:29 (월)
사람과 자연의 걸작 ‘남해 가천다랭이마을’
사람과 자연의 걸작 ‘남해 가천다랭이마을’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4.07.30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남해 가천다랭이마을은 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조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108계단 논ㆍ암수바위 등 볼거리ㆍ먹거리ㆍ 즐길거리 다양
체험ㆍ휴양 가능 마을 선정… 마을 뒤 설흘산 정상 “탄성”

  여름휴가 계획을 짤 때 태반이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비용이 많이 안 들고, 가족 전체가 즐길만한 거리가 있는 곳,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고 말이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할 만한 국내 여행지가 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여름 휴가지를 고민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즐길 수 있는 휴가지를 30곳 선정했다. 이름하여 ‘산, 들, 강, 바다로 떠나는 농촌 여름휴가지 30선’. 그 중 바다로 떠나는 휴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남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선사하는 풍광은 남해대교와 노량해협.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는 길이 660m로 40여 년 전 준공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튼튼한 모습으로 노량해협을 두 발로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 아래 노량해전의 격전지였던 노량해협에는 제법 물살이 센 조류가 군마가 지축을 흔들듯 힘차게 달려간다. 여행 팁 하나. 낮에는 마치 이순신 장군마냥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하는 남해대교는 밤에는 은은한 경관등으로 매우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데이트 코스로 좋다.

 그런 대교를 뒤로하고 다시 다랭이마을로 내달린다. 구불구불 국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머리 뒤로 휙휙 사라져 가는 풍경을 보고 차를 멈추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신선한 공기는 신선하다는 말로만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치 도시생활로 찌든 내 폐부를 정화하는 느낌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목적지로 향한다. 대교에서 약 20분을 달려 행정구역상 남면이라는 곳의 경계 안으로 들어간다. 석교마을을 지나 20분을 더 운전해 산모퉁이를 두 번 정도 도니 광활한 바다가 쫙 펼쳐진다. 그리고 바다에서 차곡차곡 108계단을 이루며 도로 턱밑까지 올라온 다랭이 논. 드디어 가천다랭이마을이다.

▲ 남해 가천다랭이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있다.
 일명 삿갓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다랭이 논은 남해 사람의 근면성을 보여주듯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 데서 유래된 삿갓논은 자투리땅도 소중히 활용한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다랭이 논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라보는 가천마을의 풍경은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특히 주차장에서 그대로 도로를 타고 100m 정도 가면 쉼터처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 가장 좋은 각도로 다랭이마을을 담을 수 있다.

 다랭이 논갈기, 일일어부체험, 뗏목타기, 짚공예, 시골학교 운동회, 해산물 채취, 시금치1봄동 등 나물캐기 등을 즐길 수 있다. 가장 원시농이며 자연과 가장 잘 조화를 이뤄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지난 2005년 명승지로 지정이 되고부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을을 찾는 관광객 중에는 다랭이마을의 먹거리를 못 잊어 방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먹거리는 막걸리와 신선한 횟감. 바닷가 갯바위까지 바다 구경차 내려갔다, 마을 쪽으로 다시 올라오는 데 지친 내방객에게 시원한 막걸리는 참으로 좋은 유기농 청량제다. 쭉 들이키고 안주로 회까지 먹으면 일점선도(一點仙島ㆍ한 점 신선의 섬)라 불리는 남해섬에 내가 바로 신선이다.

 다랭이 논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면 입구에 자연암석 돌로 생긴 커다란 한 쌍의 암수바위가 있다. 높이 5.9m의 숫바위와 4.9m의 암바위는 전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으며 간절히 소원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득남을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이 암수바위는 1751년 고을 현령이던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땅속에 묻혀 있는데 우마(牛馬)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하여 사람을 시켜 그 자리를 파 보게 하니 지금의 암수바위가 있어 숫바위는 일으켜주고 암바위는 그대로 둔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해오는 말과 실제로 있었던 일을 보면 주위에 농사를 짓기 위해 지저분한 오물을 뿌리거나 손가락질을 하면 손이 썩고 자식들이 불행해진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23일에 풍농과 풍어가 되도록 지극한 정성으로 제(祭)를 올리고 있으며 특히 배를 가지고 있는 어민들은 해난사고를 방지하고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한다.

 암수바위 구경을 마친 뒤 마을 뒤 설흘산에 오른다. 설흘산은 마을과 어우러져 한 폭의 병풍을 연상케 한다. 해발 481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깎아지른 바위와 탁 트인 바다가 이 산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모두 작품이 될 지경이다.

 설흘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앵강만뿐만 아니라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보인다. 이성계가 조선을 갖기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바위들도 또렷하게 보인다. 무엇보다도 가천 다랭이 마을이 팔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깝게 내려다보여 인상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