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2:58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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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84)
 1968년 10월에 한국만화가협회가 문화관광부의 인가를 얻어 출범하게 된다. 회장은 박기정 선생님이었고 부회장은 권영섭 선생님이었다. 그 뒤를 이어 한국일보 출판국이 출범했다.

 나는 서울 불광동에서 7~8년 동안 지내다가 천호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광동에 있을 땐 거래하는 출판사가 없어 생활이 어려웠다.

 합동 외의 출판사가 생기면서 그곳에서 잠시 활동을 했지만, 그 회사가 합동의 압력으로 도산하게 되면서 할 수 없이 스토리와 데생을 팔아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천호동으로 옮긴 후 처음에는 합동 계열의 흥진에서 거래를 했고, 한국전자를 거쳐 한국일보 출판국이 문을 열자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일보 출판국은 적자가 나더라도 원고료를 꼬박꼬박 지급해줘서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 후 한국일보 출판국와 합동이 동업체제로 바뀌게 되면서 나도 작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사태가 벌어진다. 한국만화가협회에서 만화가들의 자질 문제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당시 만화출판은 원고가 회사에 접수되면 회사에서 만화윤리위원회에 검열에 넘기고, 검열에서 통과한 작품만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질이 인정되지 않는 작가는 아예 윤리위원회에 접수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태껏 고생하다가 드디어 생활이 안정됐는데, 만화가협회가 신인 작가들의 밥줄을 끊어 놓겠다는 것인가? 만화가협회에서는 사이비 작가를 색출하고 일본 만화를 번안하는 작가를 몰아내겠다는 생각이었다.

 취지는 얼마나 좋은가. 당시 일급 만화가 중에 일본 잡지를 수입해 그대로 문하생에게 개작을 시켜 원고를 만들어 접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누가 사이비이고 누가 자질이 없는지는 정말 판가름하기 어려웠다. 또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작가도 있을 수 있었다.

 만화가협회는 작가들을 불러 시험을 치르게 했고, 나도 그 시험을 보았다. 문제는 한문으로 ‘만화가협회’를 써보라는 것과 몇 가지 시사와 상식문제였다. 시험을 무사히 마쳤지만, 만화가협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다시 자질 문제를 거론해 신인 작가들은 비상이 걸리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몇 년씩 창작 생활을 하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괘씸했다. 그래서 협회에 희의가 있는 날을 택해 동료들과 만화가협회로 몰려갔다. 협회에 도착해 소리를 지르며 사무실 앞으로 달려가자, 회의를 하던 이사들은 재빠르게 문을 잠궈 버린다. 나는 잔뜩 화가 나서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차버렸다.

 사무실 안에서는 지레 겁을 먹은 이사들이 경찰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기성 만화가와 신인 만화가가 한판 벌릴 참이다.

 이때 사무실 안에 있던 박기정 선생님은 사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고, 문을 잠그고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틸 것이 아니라 한두 대 맞더라도 당당히 맞서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대담하게 문 쪽으로 걸어가서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코를 대고 문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문이 열고 나서는 박기정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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