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3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25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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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82)
 141. 백기 든 합동

 당시 한국일보 장기영 회장의 큰아들 장강재 사장이 아버지 일을 도와 신문사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다.

 합동에서는 한강 건너 양평동에다 ‘흥진’이라는 만화출판사를 만들어 합동과 거래하지 않는 작가의 원고를 받기 시작했다. 갈 곳 없는 작가들은 그곳으로 몰렸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사무실을 오픈하자, 흥진에서 거래하던 작가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 흥진 출판사는 무명무실하게 된다. 두 거물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한국전자에서는 출판한 만화책을 대여점에 보급하려 하지만, 합동과 계약을 맺고 있어 책을 받아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합동과 계약을 맺지 않는 대여점과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래하는 대여점 수가 적어 책을 원활히 보급할 수 없었다.

 겨우 운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합동에서 계약을 맺지 않은 대여점을 상대로 재고 만화를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한다. 엎친데 덮친다고 하던가, 매일 수십 권의 원고가 필요한데, 원고가 부족해지자 일부 양심 없는 만화가들이 1~2년 전에 출간한 자기 원고를 조금 고쳐 신작으로 속여 출판사에 넘겼다.

 영업이 잘될 리 없었다. 한국일보는 사업 계획을 전환하게 된다. 우선 구로동에 있는 한국전자 사무실을 폐쇄하고, 거래 작가도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을 한국일보 본사 12층으로 옮기고 다시 원고를 접수 받는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합동은 한국일보도 다른 출판사처럼 얼마 못 견디고 망할 것이라 믿었다.

 한국일보는 그 예상을 깨고 그럭저럭 버텨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강기영 회장은 장강재 사장을 불러 출판사업에 대해 점검을 하고는 무척 놀라게 된다. 시작부터 8개월 사이에 적자가 8천만 원이 난 것이다. 지금이야 그 돈은 사무실 인테리어값 정도지만, 그 당시는 보통 집 한 채가 200만 원 정도 할 적이니 엄청난 액수였다. 강 회장은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불같이 화를 냈다.

 사실을 전해 들은 합동은 쾌재를 불렀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깨진 독에 물 붓듯 적자 운영에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합동의 판단은 또 빗나간다. 잔뜩 화가 난 장기영 회장은 돈보다도 자존심이 상했다. 자기가 누구인가? 한국일보의 회장이고 경제기획원 장관도 역임한 시람이 아닌가. 그런데 보잘것 없는 만화출판 업자들이 자기에게 이기겠다고 바락바락 덤벼드니 참을 수 없었다.

 장기영 회장은 “만화출판은 이제부터다”하고 선언 뒤 물량 공세로 나가기 시작한다. 우선 합동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 7~8명을 한 사람당 2~300만 원씩 계약금을 주고 섭외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배우나 가수를 통틀어도 이런 거금을 주고 섭외하지 못할 때다.

 그 상황을 지켜본 합동은 급히 2명의 주주를 한국일보로 파견시켜 협상을 하게 된다. 드디어 한국일보는 합동과의 협상을 통해 정상적인 영업을 하게 된다. 합동이 한국일보에 백기를 든 것이다.

 박기정 선생님은 그 당시 암울했던 한국 만화 판에 대단한 공을 세우신 것이다. 그 덕으로 많은 만화가들이 생활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만화가 지망생들도 창작 기회를 얻게 된다. 한국일보 초창기에 데뷔한 대표적인 작가는 이상무, 김 민, 허영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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