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속에 인삼을 넣어 끓인 국으로, 삼복더위 시식의 하나이며 이열치열을 위하여 이를 먹어야 삼복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삼국지(三國志)>와 <수서(隋書)>에 한(韓:삼한)에는 꼬리 길이가 5자[尺] 되는 세미계(細尾鷄)가 있으며, 백제에도 닭이 있었다고 했다. 일본의 나라(奈良)시대(756년) 정창원(正倉院)의 문서를 보면 시약원(施藥院)에 인삼 50근을 올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인삼이 일본까지 수출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강장약(强壯藥)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에 보신탕이 식성에 맞지 않는 사람을 위해 복날의 대체식품으로 된 것이 계삼탕이다. 닭이 가진 평(平)한 성질에 인삼이 가진 온성을 결합시켜 상극설에 적용시켰는데, 삼계(蔘鷄)인 화(火)가 복(伏)인 금(金)을 극살한다는 음양오행설의 상극(相剋) 법칙인 화극금(火剋金)설에 따라 복날에 시식됐다.
중국 夏나라 홍(弘)이 강릉으로 가는 길에 귀신이 있어 뭐하는가 물어봤다. 귀신이 답하기를 염라대왕의 명으로 형(荊)과 양(揚) 두 곳의 사람들을 죽이러 간다. 그 사람이 죽기 싫으면 오골계를 명치에 놔두라고 했다. 홍(弘)이 가보니 가슴앓이, 배앓이 등 악질로 신음하고 있어 오골계 처방을 가르쳐 줬더니 쾌유했다.
또 명(明)의 ‘본초강목’에 오골계에는 깃털이 희고 뼈가 검은 것, 깃털과 뼈가 검은 것, 뼈와 살이 다 검은 것, 살은 희고 뼈가 검은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중 약으로 쓰기에는 살과 뼈가 다 검은 것이 좋으며, 혓바닥이 검으면 골육이 검다고 했다.
이후 이런 증세를 치유하기 위해 오골계를 약으로 쓰게 됐다고 한다. 조선 후기 ‘임원십육지’와 ‘규합총서’에는 오골계의 뼈가 푸른색이어야 진짜 오골계다. 겉으로는 알기 어렵고 눈과 혀가 검어야 뼈가 푸르다고 했다. 이로써 오골계를 약용이나 식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또한 ‘동의보감’에는 풍을 방지하고, 여성의 산후 조리에 좋으며, 특히 늑막염 및 ‘노이로제(Neurose)’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남자는 암탉이 좋고, 여자는 수탉이 좋다고 하며, 중국 송(宋)에서는 약용 닭으로 조선 닭을 꼽았으며, 왕실에서도 수라상에 올렸다고 한다.
가축 중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진돗개, 오골계, 조랑말, 삽살개의 4종이다. 그 중 오골계는 천연기념물 265호로 지정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날이면 계삼탕에 천연기념물을 먹는다는 것을 다 같이 명심해야 한다.
또한 계삼탕이 삼계탕으로 부르게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명칭을 다시 붙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닭 속에 인삼을 넣는 것인지, 인삼 속에 닭을 넣는 것이 아니라면 ‘계삼탕’으로 불러야 옳지 않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