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0:0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22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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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80)
 139. 합동의 횡포

 한국은 차츰 국력을 회복했다. 이제 슬픈 이야기보다 스포츠 같은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그 무렵 미국의 프로 권투가 인기 있었고, 다방이나 술집에 TV로 미국 프로 권투를 보려는 사람이 몰렸다. 인기가 많다 보니, 동양에 권투연맹이 생겼는데 그곳에서 한국 선수가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때를 맞춰 출간된 ‘도전자’는 항일 정신과 함께 권투가 혼합돼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무려 40여 편이나 이어져 나갔고, 그 인기를 토대로 골목마다 대여점이 생겨났다. 박기정 선생님은 프로 레슬링이 유행할 때를 맞춰 후속작 ‘레슬러’를 출간하면서 도전자의 인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1960년대 초, 만화대여점이 인기를 끌면서 만화 황금시장으로 변모했다.

 그 무렵 신촌의 진영출판사 이영래 사장과 제일문고, 부엉이문고 등 만화 출판사 7곳이 결속해 만화 시장을 독점하겠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곧 행동에 들어갔다.

 이들의 모임을 ‘합동’이라 불렸고 이 합동은 전국 대여점에 전속계약을 맺고 타 출판사의 책을 받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자연 타 출판사는 도산하게 되고, 작가들은 갈 수 있는 출판사가 없어 합동의 눈치를 보며 활동하는 처지가 된다. 또 만화가 지망생들은 등용할 기회를 잃었다.

 박기정 선생님과 같이 어울려 다니던 작가 세 분도 출판사와 거래 중단 선고를 받게 된다. 이유는 이들의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 이들은 한참 자녀들 교육에 생활비에 돈 쓸 곳이 많은 가장인데, 출판사 거래가 중단되면 살아가기 어려운 처지였다.

 놀란 그들은 박기정 선생님에게 하소연했고, 선생님은 그들을 데리고 신촌의 이영래 회장 사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은 이영래 회장에게 “당신이 누구 덕으로 돈을 벌었는데, 이제 와서 판매 부수가 부진하다고 이래도 되는 거요?”라며 따졌다. 선생님의 기에 밀린 이영래 회장은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세 분을 복직시키라고 지시를 내렸다.

 또 한 번은 합동에서 전체적으로 원고료를 삭감한다고 통보했다. 집안에서 출판업을 하는 박기정 선생님은 판매 부수만 알면 원고료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전국 총판에 작가들의 판매 부수를 알아내 그 자료를 가지고 이영래 회장에게 “당신, 책이 이만큼 팔렸으면 원고료로 이만큼 줘야 하는데, 왜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깎자고 하는 거요?”라며 따져 들었다. 그 결과 원고료가 삭감되지 않고 되려 높아졌다.

 합동은 어떻게 해서든 작가와 대여점의 고혈을 빼먹으려 했고, 선생님은 항상 약자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합동의 독점 체제가 무너져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합동의 부당 계약, 원고 삭감, 신인 차단, 새로운 회사의 도산 등 온갖 악행을 저지하는 것은 아주 강력한 출판사의 출범뿐이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아주 강력한 재벌을 판에 끌어들인다.

 캐리커처를 종종 그려주며 사귀게 된 한국일보 장기영 회장을 만나 만화출판업을 권유한다. 장기영 회장은 흔쾌히 승낙했고 한국일보사에 만화출판업에 대한 자료 조사를 지시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비밀리에 진행했던 이 정보가 합동에 전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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