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참사에도 우크라 동부 포성은 여전
여객기 참사에도 우크라 동부 포성은 여전
  • 연합뉴스
  • 승인 2014.07.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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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탱크·군용트럭 행렬…곳곳에 정부군·반군 초소
▲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도시 토레즈 인근의 그라보보 마을 들판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잔해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양측 교전 지속, 정부군 전투기 동원해 반군 거점 포격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 시내를 19일 새벽(현지시간) 출발해 약 2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아빌로-우스펜카' 국경 검문소.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로 들어가는 관문 가운데 하나다.

검문소에선 도네츠크주와 이웃 루간스크주에서 계속되고 있는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간 교전 사태를 반영하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검문소 풍경을 은근슬쩍 찍으려 기자가 멀리서 카메라 셔터를 서너 차례 누르자마자 어느새 눈치를 챈 국경수비대원의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온다. 수비대원은 기자를 불러 찍은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고 모두 삭제하라고 요구한 뒤 여권까지 빼앗아버렸다. 수비대원은 규정을 몰랐다며 사정하는 기자에게 한참 뒤에야 여권을 돌려주며 세관 통과를 허용했다.

10m 정도 거리를 두고 설치된 우크라이나 쪽 검문소의 분위기는 한층 더 살벌했다.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서는 가운데 국경 수비대원이 우크라이나로 입국하는 이유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한국기자이며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현장을 취재하러 서울서 멀리 날아왔다는 허풍 섞인 설명을 들은 뒤에야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검문소 주변엔 러시아군의 침공을 저지하려는 것인 듯 5m 정도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져 있고 길 양옆 참호 속에선 저격수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한국의 휴전선 못지않은 살벌한 풍경이었다.

▲ 격추된 말레이시아 여객기 잔해가 떨어진 그라보보 마을 들판 모습. 동체 잔해와 가방, 옷가지 등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다.
국경에서 만난 현지인 택시 기사 사샤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검문소에서 긴장된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국경을 통과해 도네츠크주 동부 소도시 토레즈 인근의 여객기 격추 현장으로 가는 도로엔 우크라이나 정부군 탱크나 기관포를 실은 트럭들이 느리게 이동하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다.

운전기사 사샤는 이 지역부턴 언제 어디서 총알이나 포탄이 날아올지 모른다며 자동차에 속도를 냈다. 시속 70km 이상을 달려야 총격을 받더라도 맞을 확률이 적다는 설명이었다. 길 양편 숲 속에 매복한 정부군이 반군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사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는 기사의 설명에 기자의 손에선 저절로 땀이 배어 나왔다.

한참을 달리자 정부군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이 기자 일행을 막아섰다. 중무장한 군인들은 방문 목적을 묻고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한 뒤에야 일행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얼마를 더 달렸을까. 이번엔 중무장한 반군들이 지키는 초소가 나타났다. 역시 방문 이유 설명과 신분증 확인 절차가 뒤따랐다. 기사 사샤는 여기부턴 반군 장악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했다.

▲ 우크라이나 정부군 장갑차들이 지난 7일(현지시간) 동부 카르키프의 데브헨케 기지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객기 피격 현장인 그라보보 마을에서 취재를 하는 도중에도 먼곳에선 포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다 들른 토레즈의 인터넷 카페 주인은 "바로 조금 전 이곳에서 가까운 사우르-마길라 고원에 정부군 전투기들이 폭격을 가해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도 정부군의 공격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군은 또 이날 오후 도네츠크주 북서부 쿠이비셰프스크 지역에도 폭격을 가해 민가 2채와 유치원이 부서졌으며 주민들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이 장악중이던 도네츠크 공항도 정부군 공격을 받았다. 공항을 장악중이던 수백 명의 반군은 정부군 포위망에 갇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동부도시 루간스크에서 이날 정부군의 공격으로 주민 16명이 숨지고 66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당국은 정부군이 다른 동부 도시 루간스크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밝혔다. 루간스크 반군 측은 그러나 교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군이 도시를 장악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300명에 가까운 탑승객의 목숨을 앗아간 여객기 참사도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을 멈추게 하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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