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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멕시코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멕시코
  • 도용복
  • 승인 2014.07.1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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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의 정열 품은 태양의 대륙
‘마야’의 중심지… 전통과 현대 공존
▲ 칸쿤의 아름다운 바다. 칸쿤은 특히 해변의 모래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태양의 대륙’ 라틴(Latin)의 정열이 살아 숨 쉬는 곳, 기원전 2천년 미스터리의 문명 ‘마야’의 중심지였던 땅이다. 유카탄반도를 따라 거대한 신전과 현재도 불가해(不可解)한 건축술과 천문학을 자랑하던 마야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미지(未知)의 문명이 됐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스페인 등 외부세력의 무지한 학살이 그 원인이라는 설과 마야내의 무분별한 개간이 ‘흑사병’에 맞먹는 병충해를 불러 급작스럽게 소멸됐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유카난 반도의 끝, 마야문명의 출발지 메리다를 거쳐 내륙 밀림으로 들어서면 유적도시 ‘욱스말’이 나타난다. 욱스말은 마야 말로 ‘풍성한 추수’라는 뜻이다. 도시 내부엔 이례적으로 타원형으로 돌축을 쌓은 마법사 신전과 지평선 위로 금성이 내려앉은 지점을 정확히 직선으로 바라보며 만든 총독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욱스말은 뭔가 알지 못할 이유로 3백년 만에 홀연히 사라졌다. 유엔은 욱스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 맨발의 아이들이 할아버지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다소 어설프지만 귀여운 학예회가 열리고 있다.
 현재의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해 북아메리카에 위치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생겨난 마야는 중앙아메리카에까지 걸친 거대문명이었다. 중미에 널리 퍼진 인디헤나 원주민들이 멕시코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기원에서 비롯된다. 멕시코가 ‘라틴의 진수’라 불리며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도는 멕시코시티, 인구는 1억 400만 명이다.

 그렇게 세계사에 간섭하며 닿은 멕시코의 첫 국경 마을이 치아파스 어꼬신고였다.

 사람들 소리에, 마이크 소음에 마을은 초입부터 시끌벅적했다. 이 소리들을 쫓아 들어가니 한 초등학교에 다다랐다. 맨발의 아이들이 할아버지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다소 어설프지만 귀여운 학예회가 열리고 있었다. 워낙 빈곤하다보니 학예회가 곧 마을 축제였다. 이날은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생활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이 물씬 풍기는 웃음들이었다. 달리기며 릴레이, 오자미 던지기로 온 가족이 한껏 신났던 우리네 1970~80년대 그 시절 가을 운동회처럼.

 치아파스 어꼬신고를 벗어나면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태평양을 따라 신이 멕시코에 내린 선물인 천혜의 해변들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아카풀코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휴양을 위해 찾아든다.

 최근엔 캄페체주(州)가 유명하다. 과거 스페인 요새가 있던 곳으로 아름다운 풍광과 풍부한 바다자원 때문에 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특히 칸쿤이란 도시는 해변의 모래가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행운의 모래’라고 소문이 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40여 년 전 칸쿤은 주민이 채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어촌이었다. 1960년대 말 멕시코 정부가 공사를 시작해 새로운 휴양지로 조성했다. 그 덕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방문객 수효도 급증하면서 지금은 최고의 리조트 해변으로 변모했다.

▲ 체첸이트사의 매머드급 피라미드 카스티요 신전. 4면의 계단이 모두 91개씩 있고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1개 있다. 모두 합하면 365개, 1년에 해당한다.
 밀림 속 욱스말의 마야가 사라질 무렵 유카탄반도의 중앙 석회암지대엔 새로운 유적지 ‘치첸이트사’가 세워졌다. 약 8천만 제곱미터(2천400만 평) 면적에 종교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대표적인 유적은 높이 25미터의 매머드급 피라미드인 ‘카스티요 신전’. 건축 연대를 추정해보면 서기 9백년쯤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지구의 공전주기에 맞춰 전체 계단의 숫자를 365개로 한 것에 다시금 놀란다. 당시 천문학이 현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치첸이트사는 이전의 마야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새겼다. 해마다 한 사람씩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의 해골을 판에 찍어 유적 벽면에 붙인 것이다. 제물로 바칠 인물은 지금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통해 결정했다. 이긴 팀원 중 가장 건강한 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 당시 사람들은 제물이 되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해서 경기에 이기려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욱스말과 치첸이트사로 이어지던 마야가 멸망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스페인과 멕시코 외부세력의 침입을 꼽는 학자들이 주류다. 도시를 중심으로 급작스럽게 인구가 늘자 척박한 땅마저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병충해가 증가하고 면역력이 약화돼 근세유럽의 흑사병처럼 대규모로 병사했다는 주장도 있다.

 마야의 멸망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무엇도 확실치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마야의 거대한 유적과 유물이 그대로 남았음에도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식민지 개척과 금광전쟁, 나아가 일부 국가의 제국주의 야망이 수천년을 이어온 마야를 송두리째 없애버린 건 인류의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마추픽추의 잉카와 더불어 인류는 그렇게 두 개의 문명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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