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8:32 (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16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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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76)
 136. 외톨이 피난 생활

 1950년 6월 25일 조용한 공휴일 새벽, 북쪽의 공산당은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물밀 듯 돌진해 왔다.

 오 형제는 이 급보에 비상이 걸린다. 그때 기정은 고등학생이고, 기준은 중학생이다.

 그러니 기준만 빼고는 모두 군 징집 대상이었다. 게다가 위로 두 형은 엘리트라 인민군에게 붙들리면 장교로, 혹은 사형을 당할게 뻔했다. 공산당이 싫은 두 형은 서둘러 인민군을 피해 서울을 빠져나가야 했다.

 기준은 너무 어려 두 형이 데리고 나서며 남은 동생들에게 “너희들 전쟁 끝나면 만나자”하면서 급히 길을 나섰다. 두 형은 시골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도피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남은 기정과 기세는 부산 쪽으로 내려갔다.

 부산에서 기세 형은 인민군과 대항하기 위해 해병대에 지원해 낙동강 전투에 투입된다. 마지막 남은 기세 형과 이별할 적에는 꾹 참았던 눈물이 났다.

 이제 기정뿐이다. 기정은 객지에서 외톨이가 된 것이다. 기정은 형들이 헤어지면서 쥐여준 돈으로 생활했지만, 그 돈도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지 행세를 하든지, 돈을 벌어야 했다. 어릴 적부터 자존심이 강했던 기정은 거지는 죽어도 못 할 것 같아, 돈을 벌기로 한다. 돈벌이로는 밑천이 들지 않은 뺑뺑이 돌리기를 택했다. 소위 말하는 야바위인 것이다.

 뺑뺑이 판과 좌판을 만들어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 모퉁이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첫 손님은 지나가는 개구쟁이 중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왁자지껄 좌판 앞을 지나다가, 한 아이가 “저것 봐, 재밌겠는데”하면서 걸음을 멈추자 다른 아이들도 같이 멈춰 섰다.

 그리고 기정에게 “형,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하고 묻는다. 기정은 학생들이 반가워서 게임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은 조잘대면서 신나게 한 판씩 했다. 어떤 아이는 돈을 따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잃기도 했다. 그렇게 몇 판씩 놀고는 몰려갔다.

 학생들이 딴 돈보다 잃은 돈이 더 많아 기정의 손에는 몇 푼이 쥐어졌다. 난생처음 벌어 보는 돈이다. 기정이 그 돈이 신기해서 보고 또 봤다.

 그런 식으로 5~6번을 하고 나니 돈이 꽤 생겼다. 하루 생활비는 될 것 같다. 이 다음부터는 버는 것은 모두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흐뭇해진다. 그러나 세상일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쪽에서 껄렁한 청년 4~5명이 걸어오더니 기정에게 “너 어디서 온 놈이야, 여기 터줏대감들 인사도 없이 영업해도 되는 거냐”하며 시비를 걸어왔다. 상대의 수가 많다. 여기는 낯선 타지에 자기는 외톨이가 아닌가,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이들과 맞설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불량배들의 윽박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우두머리 같은 청년이 “야! 여기서 계속 이 짓을 하고 싶으면 세금을 내란 말이야, 세금, 내 말 안 들려?”라고 한다. 할 수 없이 기정은 여태껏 번 돈의 절반을 넘겨 준다. 그들은 그제야 “장사 잘해라”하면서 돌아갔다.

 기정은 계속 장사를 했다. 기정의 생각으로는 생활비 외에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어김없이 불량배에게 돈을 뺏기는 바람에 겨우 입에 풀칠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그래서 당당히 맞서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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