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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불편한 토크쇼 (1)
의사들 불편한 토크쇼 (1)
  • 조성돈
  • 승인 2014.07.09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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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전 언론인
 며칠 전, ‘당신이 모르는 수면 이야기’라는 제목의 한 토크쇼가 있었다. 토크쇼엔 홍혜걸 등 세 의사가 등장한다. ‘수면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는 것이 토크쇼의 목적이다. 유모 박사는 “건강을 위해서는 소주를 마시는 것보다 수면제 1알을 먹고 자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리고 홍씨는 “최근 나오는 수면제는 옛날 수면제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으로 안전성이 매우 높은 약이다”고 기염을 토한다. 그가 의학전문기자로 나섰을 적에 그의 철학이 정통의학의 틀을 벗어나는 듯 보여 매우 신선했다. 이후 그의 기사와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날이 갈수록 평범한 의사로 전락해 가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물론 홍씨를 비난할 의도는 없다. 유감스럽지만 국내 대부분의 의사들의 인식은 홍씨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로 인해 환자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코자 할 뿐이다.

 ‘당신이 모르는 수면 이야기’라는 제목부터가 불편하다. ‘수면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마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생물학의 2대 난제처럼, 의학에서 풀리지 않는 난제 중 난제에 속한다. 대뇌의 휴식ㆍ각종 호르몬의 분비 등을 수면의 목적으로 지목하지만, 현재로서 수면은 정의조차도 불명확하다. 수면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우리가 왜 잠을 자야하는지 모른다. 즉, 현재로서는 수면을 논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가 ‘수면에 관한 오해나 진실’을 설명하다니!

 수면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면증과 수면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가 않다. 왜냐하면 수면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과연 불면이 치료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경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씨는 어떤 글에서 ‘의사 처방에 따라 할시온이라는 수면제를 한 알 정도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언급한 최근 나온 수면제란 ‘할시온’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할시온은 상당히 오래된 의약으로, 학술적으로도 결코 안전한 약이 아니다. 할시온에 대한 부작용 호소가 인터넷 상에 줄을 잇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수면장애로 6년간 할시온을 복용 중인 44세의 남자의 하소연은 충격적이다. 조회수는 9천571건이다. 잠이 오지 않을 경우, 수면제 1알을 먹고 자라고 하지만, 일단 의존성이 생기면 그런 주문은 환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남자는 약의 용량을 자꾸 늘려갔다. 물론 그것은 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중독성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할시온의 중독성에서 비롯된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에 입원, 약물치료까지 받게 됐으며, 지금은 약을 끊어보려고 하지만, 마약처럼 도저히 끊지 못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무서운 것은 잠을 못자는 것이 아니라, 할시온을 하루 두 알 복용하고 자다가 깨면 또 복용함”을 호소한다. 자주 먹다보니 어떤 때는 먹었는지 안먹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면운전처럼,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할시온의 전형적인 부작용이다. 모든 의사들은 이런 할시온의 전형적인 부작용에 대하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할시온’은 반드시 단기간에만 투여해야 하며, ‘중증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 용량을 개인별로 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투여량을 늘릴 경우 특히 용량 의존성이 크므로 신중히 투여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의약 중 하나이다.

 많은 부작용이 알려진 ‘벤조디아제핀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완전히 다른 타입’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할시온’은 ‘벤조디아제핀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상 사고ㆍ행동변화 등이 보고돼 있다. 즉 제약회사는 수면운전ㆍ응급을 요하는 중증 아낙플락시스 증상ㆍ중추신경계 이상 증상 등 끔찍한 부작용들을 끝도없이 나열하고 있다. 이처럼 제약회사들도 부작용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음에도, 의사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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