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45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07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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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69)
 131. 수집에 동원된 학생들

 1970년대만 해도 국민들은 문화재에 관심이 없었다. 개개인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다. 그런 나라가 차츰 살림이 윤택해지면서 땅값이 오르고 문화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쯤의 일이다.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느닷없이 문화재 수집령이 내려진다. 조례시간에 문화재의 가치를 상기시키며 각 가정의 부엌이나 다락, 창고에 쓰지 않고 방치해 놓은 옛날 그릇, 항아리 등을 학교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문화재를 수집해 교육용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취지는 참 훌륭했다. 학생들은 자기 집을 뒤져 옛날 그릇을 학교로 가져온다.

 현재 조선백자가 깨끗하게 보관됐으면 수천, 수억의 가치가 있겠지만, 그때는 조선시대라 해도 불과 60년 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시기였다. 그러니 웬만한 보통 집에서 오래된 것이라면 조선시대 그릇이었다.

 부농이던 우리 외가는 그런 그릇이 나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큰 외가에서 제사 때 쓰는 그릇 중 하얀 사기도 있었다. 이 사기는 아주 단단한 것이 스스로 광이 났었는데, 조선백자였던 것 같다.

 외가의 셋째 삼촌 집 큰 딸 동립이가 그 당시 삼천포여중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옛날 그릇 가져오라고 하니 마침 집안에서 오래되어 쓰지 않는 것이 있어 담임 선생님께 가져다주었다.

 선생님은 잘했다며 동립를 칭찬했다. 그런데 며칠 후 담임 선생님이 삼천포 시내에서 6㎞나 떨어진 동립이 집까지 걸어오셨다. 놀란 동립이에게 선생님은 “집 구경을 하러 왔다”며 한 시간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선생님이 가고 나서 동립이는 개에게 밥을 주려 마루 밑에 둔 밥그릇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동립이는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가정 방문을 온 담임 선생님이 가장 의심이 갔다. 학교에 가져간 그릇이 마음에 들어서 차마 또 가져오라고는 못하고 직접 찾아와 마루 밑의 개 밥그릇을 몰래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닐까. 동립이는 그렇게 선생님을 의심했지만 개 밥그릇은 별로 대단한 것 같지 않아 모른 척 넘어갔다.

 1960년부터 1970년 중반까지 서부경남뿐 아니라 전 국민이 문화재에는 무관심했고, 방치해 놓은 오래된 그릇이 귀해질 것을 몰랐지만, 나중에는 가치가 높아지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 알아챈 삼천포여자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자기 위치를 이용해 선수를 친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동립이 집에 물건뿐 아니라, 전교생이 가져온 물건 중 좋은 것만 골라 자기 집 정원에 쌓아 놓고 아무도 몰래 부산으로 이사 갈 계획을 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재우에게 비밀로 하라고 일렀는데, 재우가 나에게 그 비밀의 현장을 보여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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