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1:3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01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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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65)
 127. 재각의 병풍

 초등학교 3학년, 삼천포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을 때 같은 반 학생 중에 이름은 송철주(가명)라는 벌리뜰 지주 아들이 있었다. 그 아이는 항상 좋은 옷을 입고 공부를 잘해 인기가 많았다. 나와 철주는 삼천포 장로교회에서 함께 다니면서 친하게 지냈다.

 철주 집은 논과 밭, 그리고 야산에 땅이 많은 부자였다. 일제강점기 때 그 집 어른들이 가문의 재각을 짓고 안에 세워둘 병풍을 제작하는데, 당시 유명한 화가를 초청해 열흘 동안 푸짐하게 대접한 후 그림을 그리게 했고, 쌀 열 가마를 값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요즘이나 쌀 한 가마에 20만 원 정도지만 일제강점기 때나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상당 기간은 쌀값이 엄청났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화가 나면 “내가 쌀 두 말 값 받고 너희를 가르친다”하고 호통치곤 했다. 그렇게 계산하면 쌀 한 가마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다섯 달 봉급인 셈이다. 그러니 철주의 집은 그만큼 부자였다.

 총명하던 철주는 성인이 돼서 군대에 갔는데, 복무 중에 무슨 이유인지 죽으려고 약을 먹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고 살아났지만, 그 후부터는 총명함이 둔해졌고 한 번씩 정상이 아니다 싶은 행동을 했었다.

 1977년 서울에서 만화를 그리던 내가 삼천포에 내려와 1년간 할머니 집에 머물 때의 일이다. 그때는 나와 건이, 재우, 철주 이렇게 4명이 어울려 다녔는데, 공교롭게도 세 친구 모두 벌리뜰 지주의 집안이다.

 총명함이 둔화된 철주는 늘 궁핍하게 지냈고 나도 할머니 집에서 얹혀살며 궁핍한 생활을 할 때이다. 그때 철주가 나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것은 자기 집 재각에 있는 병풍을 팔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철주에게 병풍을 사고, 후에 서울로 가져가 더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벌라는 것이었다. 꽤 솔깃한 제안에 철주와 재각까지 향했다.

 재각은 서동 언덕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무를 깔아놓은 바닥은 깨끗한 것이 엄숙해 보였다. 그리고 중앙에 펼쳐진 병풍은 시간이 흘렀지만 깨끗하게 보존돼 있었다.

 병풍에는 꽃과 나비, 거북이와 물고기가 그려져 있었다. 어느 화가의 작품인지 알지 못했지만, 병풍을 보고나니 철주의 의견대로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때 철주는 3만 원을 달라고 했다. 아마 지금으로는 30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래할 날짜를 정하고 나는 어렵게 돈을 만들어 철주를 기다렸다. 그러나 철주는 약속한 날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철주가 마음이 변했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후 나는 철주가 나타나지 않은 사연을 다른 사람에게 듣고는 경악을 했다. 그날 철주가 재각에서 병풍을 가져 나오다가 그만 어머니에게 들켰는데, 어머니는 철주에게 “조상의 재단에 모셔 놓은 병풍을 팔아먹으려는 후레자식”이라며 엄청난 꾸지람을 했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그 말이 맞는 것이다. 나는 철주가 그 병풍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입장인 줄 알았고, 또 ‘철주 집안이 슬슬 기울다 보니 팔려고 하나 보나’하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날 철주가 병풍을 들고 장소에 나왔더라면, 내가 정말 그것을 사서 되팔았다면, 내 얼굴에 엄청난 먹칠을 했을 거라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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