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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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64)
 126. 일본 장군의 칼

 소년 시절 우리 집에서 서쪽으로 다섯 집 건너에 있던 친구 김 건의 외가도 지주집이었다. 건이 엄마는 서울의 유명한 화가에게 시집을 갔는데, 건이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외가에서 살고 있는 소년이다. 건이 외가는 집이 두 채인데 한 채는 길 옆에서 솜틀집을 하고, 다른 한 채는 그 앞 골목 입구에 큰 마당이 있는 집이다.

 솜틀집은 가을이 되면 하얀 솜 가루를 날리면서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외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기계를 돌리고 나머지 시간은 늘 비워 놓았다.

 건이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청나라와 무역을 하던 분인데, 청나라가 망하고 바닷길이 막히면서 무역업을 중단하셨다.

 그래서 건이 외가에는 청나라에서 사온 보물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이따금 나에게 자랑을 했었다.

 기억나는 것들은 바둑을 둘 때 아름다운 소리가 울리는 바둑판, 피난시절 물을 담아 두고 6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물이 썩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신기한 항아리, 외삼촌이 피난 시절 이중섭에게서 샀다는 그림, 일본 장군이 사용했다는 칼.

 한 번씩 비어있는 솜틀집으로 놀러 가면 건이는 반가운 친구가 왔다면서 그냥 돌려보내기 아쉬운지 얼른 집에 들어가 보물인 일본 장군의 칼을 건넨다.

 나는 너무 좋아서 그 칼을 받아든다. 그러나 장군이 사용하던 칼이라 그런지 작은 중학생이 들기에는 버거웠다. 그리고 한 손에는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칼집을 잡고 칼을 뽑으려고 하지만 칼이 뽑히지 않았다.

 내가 한참을 낑낑대고 있는 걸 보고 건이는 “부진아 그렇게 뽑는 게 아니야”하며 칼집에 있는 버튼을 누르며 칼을 뽑으라고 가르쳐준다. 그제야 ‘스스릉’하며 칼이 뽑혀 나왔다.

 칼등 아래 길게 나 있는 홈이 칼이 멋대로 뽑히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뽑혀진 칼은 무거워서 한 손으로 들지 못해 두 손으로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마치 군대의 장군이 되어 몰려오는 적군을 한 번 휘둘러 서너 명씩 죽이는 흉내를 냈다. 건이는 내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나는 땀이 나도록 휘두르고 힘이 없어 더 이상 칼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칼을 내려놓았다.

 건이는 성인이 되어서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자기 아버지 집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그때 경기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시장 아들 재우와 건이를 보러 가기도 했다.

 먼 옛날 이야기들이다. 나는 건이 외가를 떠올리면 그때 있었던 보물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간직했다면 이중섭 그림은 10억을 오가는 가격이고, 일본 칼은 종류에 따라 수백억 원까지 할 것이고 바둑판과 항아리 등도 그 가치에 따라 수억은 나갈 것이다.

 그러나 건이 외삼촌은 타계하셨을 것 같고 또 그의 자식들이 그 보물을 처분했을 가능성도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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