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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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63)
 125. 벌리뜰 지주들

 1950년대 서부 경남의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와룡산은 해발 900m 정도지만 해변에 위치하고 있어 같은 높이의 산보다 더 높았다.

 그 산 아래에 있는 사천시 벌리동은 지금은 아파트와 건물로 빽빽이 채워져 있는 신도시지만, 1980년 이전에는 와룡산 골짜기의 맑은 물을 공급받아 해마다 풍작을 이루는 윤택한 들판이었다. 그리고 이 넓은 농토의 주인들 즉, 지주들은 거진 삼천포의 선구동 로타리 우리 동네에 모여 살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지주들이란 박경리 소설에 나오는 ‘대지주’가 아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논 3~5마지기로 농사를 짓는 농사꾼의 개념도 아니다.

 당시 삼천포 몇몇 집이 여윳돈이 생기면 재테크로 벌리뜰에 논을 사곤 했는데, 그렇게 모은 논이 10마지기가 넘어가면 농사는 벌리뜰 주민에게 삯을 주고 시키고, 수확한 농작물은 시장에 파는 것을 반복해 풍족한 생활을 하는 집안을 지주라 칭했다.

 이들 집은 대체로 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 옆에 있고, 아무런 직업 없이 지내는 것 같지만 늘 풍족하고 여유가 있었다.

 내가 유년기에 옆집이 지주의 집이었는데, 그 집 할머니는 당뇨병 환자였다. 살이 얼마나 쪘는지 용변을 보고 나면 손이 엉덩이 아래로 닿지 않아 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슬프게 우셨다.

 또 그 집 맞은 편, 동네에서 동장집이라 부르는 지주 집에는 트럭이 들어갈 만한 큰 창고가 있어 그곳에 늘 곡식을 쌓아뒀다.

 그리고 그 곳엔 목욕탕도 있었다. 당시 가정집엔 목욕탕이 없었고 일반 사람들이 목욕을 한다는 것은 일 년에 몇 번이 고작이었다.

 그 목욕탕은 창고 한편에 지름이 150㎝ 정도의 나무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 씻는 식이었다. 동장집 식구들은 항상 목욕을 하고 나면 물을 버리기 아까워 이웃 사람들에게 목욕을 권했다.

 이따금 우리 어머니는 그런 전갈이 오면 아직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은 어린 나를 데리고 목욕을 했다. 그때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같이 탕에 들어가 있으면, 나에게 “부진아 남자애가 여자 목욕탕에서 목욕하면 고추 떨어진다”라며 농담을 했는데 나는 놀라서 “엄마 정말이야?”하고 묻곤 했다.

 또 유년기 살던 집에서 후에 이사 갈 집과 중간 지점에 큰 감나무가 있는 지주 집이 있었는 데, 그 집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나무에 감꽃이 열리면 한주먹씩 따서 먹어보라며 가져왔었다. 감꽃은 잎이 두툼해 씹히는 것이 꽤 맛있었다.

 내가 소년 때 이사 간 곳의 옆집도 지주 집이었다. 그 집 주인은 부인이 둘에 자녀가 열 명이나 되었다. 이 집은 벌리뜰의 수입만으로 열 자녀 모두 대학과 고등학교까지 보냈었다.

 열 명의 자녀 중 쌍둥이였던 두 소년은 우리 골목대장 팀의 멤버였고. 우리 집과는 친척처럼 친하게 지냈었다.

 주인어른은 참 정직하신 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개에게 물려 광견병이 옮아 몇 달을 앓더니 세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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